네덜란드 정월

네덜란드 설(일본어: オランダ正月)은 일본 에도 시대 나가사키인공섬 데지마에 왕래하던 네덜란드인들이 일본의 풍습에 맞춰 벌이던 행사이다. 후에 네덜란드 학문인 난학이 인기를 얻자 난학자 사이에도 유행했다. 홍모정월(紅毛[1]正月)이라고도 한다.

역사편집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설편집

막부의 기독교 금지령(1602년)때문에 성탄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던 데지마의 네덜란드인들이 대신 절기상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날에 있는 동지를 "네덜란드 동짓날"로 삼아 즐기고, 나중에 일본 설에 맞춰 데지마에 파견근무중인 막부 관리,통사(通詞;역관)등을 초대하여 서양요리를 대접하고 서양식 연회를 즐기던 것이 이 풍습의 기원이다. 이 행사를 처음에 나가사키 사람들은 아란타 설날(阿蘭陀正月)이라고 불렀다. 그후에 통사를 비롯하여 주변 일본인에게도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에도의 네덜란드 설편집

데지마의 네덜란드 대표는 정기적으로 에도의 쇼군을 알현하는 것이 의무였는데, 1794년 당시 네덜란드 데지마 대표인 헤이스베르트 헴미가 막부를 방문할 때, 이를 접견했던 난학의 거두 오오쓰기 겐타쿠(大槻玄沢)가 이 해 11월 11일이 양력으로 1795년 1월 1일인 점에 착안하여 본인이 설립한 난학학원인 지란당(芝蘭堂)에 동료 난학자, 네덜란드 문물을 좋아하던 애호가등을 초대하여 네덜란드 설을 축하했다. 이것이 에도 네덜란드 설 풍습의 시작이다.

이 행사의 모습은 지란당신원회도(芝蘭堂新元会圖)라는 그림에 담겨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데, 서양식 벽화로 장식된 벽과 포크,나이프,와인잔등이 늘어선 테이블이 보여 당시의 즐거운 연회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당시 일본에서 쓰던 역법과 서양력(그레고리력)의 역법에는 서로 차이가 있어 매년 날짜가 일정치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편의상 일본역법으로 동지에 해당하는 날에서 11일째 되는 날을 "네덜란드 설"로 치르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오오스기 겐타쿠의 아들이 죽는 1837년무렵까지 약 44번 네덜란드 설 행사가 있었다.

네덜란드 설의 유행 배경으로는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양서 수입완화와 그에 따라 네덜란드 문화가 에도 시기의 일본사회에서 널리 퍼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주편집

  1. 홍모란 네덜란드인을 비롯한 서양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중 하나로서 유럽인 몸의 털이 붉게 보인데서 비롯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