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魯匡, ? ~ ?)은 신나라관료로, 우부풍 평릉현(平陵縣) 사람이다. 노 경공의 후예로, 권모술수에 능하여 '꾀주머니'(智囊)라고 불렸다.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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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건국 2년(10년), 왕망·소금··동전 주조·산천·생활필수품의 물가 등 6개 부문의 거래를 현(縣)에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거래 규범인 육관(六筦)을 제정하여 반포하였다. 본래 제정 이전부터 술을 제외한 5개 부문은 현에서 관리해 왔었는데, 희화 노광은 술 또한 현에서 관리할 것을 건의하였고, 이는 육관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지황 2년(21년), 남군진풍평원의 지소평(遲昭平)이 봉기하니, 왕망은 대신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때 왕망의 초청으로 온 전한의 옛 좌장군 공손록은 여러 신료들을 참소하였는데, 그 중 노광의 경우 육관을 제정하여 장인과 상인들을 괴롭혔다고 주장하였다. 왕망은 노하여 공손록을 쫓아냈으나, 한편으로는 그의 말을 받아들여 노광을 오원졸정[1]으로 좌천시켰다. 비록 육관을 노광이 혼자 제정한 것은 아니었으나, 왕망은 민심에 따라서 그에게 책임을 지웠다.

아들은 후한 건무 초기에 무릉태수를 지냈고, 손자 노공은 관직이 사도에 이르렀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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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고, 《한서
    • 권24하 식화지 下
    • 권99중 왕망전 中
    • 권99하 왕망전 下
  • 범엽, 《후한서
    • 권25 탁노위유열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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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왕망은 오원군의 명칭을 획항군(獲降郡)으로 고쳤다. 실제로는 '획항졸정'이었을 것이다.
전임
-
희화
9년 ~ ?
후임
(납언) 풍상
전임
(납언) 풍상
희화
? ~ 21년
후임
(납언) 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