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철장(達川鐵場)은 울산광역시 북구 달천동에 있는 철광석의 원산지이다. 2003년 4월 24일 울산광역시의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2]

달천철장
(達川鐵場)
대한민국 울산광역시기념물
달천철장
종목기념물 제40호
(2003년 4월 24일 지정)
면적3필지 68,292.5m2[1]
시대삼한∼조선시대까지의 철광석의 원산지[1]
관리북구
참고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 광업 / 금속광산
위치
주소울산광역시 북구 달천동 산20-1번지 일원[1]
좌표북위 35° 37′ 45″ 동경 129° 19′ 44″ / 북위 35.62917° 동경 129.32889°  / 35.62917; 129.32889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지정 사유 편집

철장이란 철의 원료인 토철, 또는 철광석을 캐던 곳을 말한다. 달천동 및 상안동 일대에 분포하는 이 유적은 원래 이름인 달내[達川]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

중국문헌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과 『후한서(後漢書)』에는 ‘한(漢)·예(濊)·왜(倭) 모두가 여기서 철을 가져가며, 모든 시장에서 철을 사용하여 매매하는 것이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는 기사가 있다. 따라서 철이 당시의 경제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2]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1452년 달천에서 생산된 철 12,500근이 수납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특히, 달천의 철은 경주 황성동의 제철유적에서 출토된 철과 함께 비소(As)성분이 확인되어 역사적 중요성을 더한다.[2]

철을 제련하는 곳을 쇠부리(쇠불이)터라 불렀는데, 달천 토철을 원료로 하는 쇠부리 터는 가까운 경주 외동읍 녹동리에서부터 멀리는 청도에까지 이르렀다.[2]

달천철장은 2008년에 유적의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삼한시대~조선시대의 채광[採鑛]유구, 청동기~삼한시대 집터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채광유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철광석 채광과 관련된 유적으로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2]

참고 문헌 편집

각주 편집

  1. 이민아 (2021년 5월 13일). “달천철장”. 《울산광역시 북구》. 2022년 1월 29일에 확인함. 
  2. 울산광역시 고시 제2003-61호, 《울산광역시 지방문화재 지정고시》, 울산광역시장, 2003-04-24

같이 보기 편집

참고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