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정민회 후보 선출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정민회 후보 선출1963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정민회의 후보를 선출한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정민회 후보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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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변영태
정당 정민회
득표율 추대

선거전 대통령 후보

이승만

대통령 후보 당선자

변영태

배경 편집

4.19와 군사정변 이후 와해된 자유당 세력은 배종덕 등 자유당 재건파, 김법린민정당 참여파, 이활민주공화당 참여파, 이범석 등 독자신당 창당파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다.[1][2] 그 중 변영태 전 총리, 윤재근 전 의원, 인태식 전 의원 등은 군정 종식과 민정 복귀를 기치로 하고 정민회를 창당했다.[3]

후보 편집

1963년 8월 29일, 정민회는 700여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변영태 전 국무총리를 당 총재와 대통령 후보로 만장일치로 지명했다. 변영태 전 총리는 지명을 수락하면서도 "정국이 변화무쌍한 이 때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퇴]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끝내 야권 단일화에 응하지 않고 완주했다.[4] 재야 지도자 강원용 목사는 당시 상황을 술회하며, 야권 단일화를 위해 사퇴하라는 자신의 말에 변영태 후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내 내자가 얼마 전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다가 이번 선거에는 반드시 내가 나가야 하고 또 나가면 틀림없이 당선된다는 계시를 받았다네. 만일에 내가 이 계시를 어기면 하나님의 중벌을 받게 된다는 얘기야."

—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강준만 著)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내내 한결같은 보수 야당의 텃밭과도 같던 호남에서

변영태는 그러더니 유권자들이 자기에게 보내온 열렬한 지지 편지들이라며 편지 한 꾸러미를 가져와 보여줬다며, "내가 보기에는 야당 후보 난립을 이용하려는 군사정부 측의 공작이 분명한데도 변영태는 그 편지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절대 지지한다는 착각에 빠져 끝내 후보로 나설 것을 고집했다"고 강 목사는 회고했다.[5]

각주 편집

  1. “자유당(自由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9년 4월 20일에 확인함. 
  2.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20일에 확인함. 
  3. “정민회(正民會)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9년 4월 25일에 확인함. 
  4.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25일에 확인함. 
  5. 강준만 (2004년 9월 23일).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인물과사상사. ISBN 9788988410998.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