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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15일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한 제5대 대통령 선거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정희는 1963년 12월 17일 취임했으므로 4년 뒤인 1967년 12월 16일 제5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가 만료돼야 했으나, 제3공화국 헌법 부칙 제2조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 및 최초의 국회의 집회는 이 헌법의 공포일로부터 1년이내에 한다. 이에 의하여 선거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는 최초의 국회의 집회일로부터 개시되고 1967년 6월 30일에 종료된다"는 조항에 따라 그보다 6개월 앞서 만료됐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1960.8 ←
1963년 10월 15일
→ 1967

투표율 85.0%
  Park Chung-hee 1963's.png Yun Posun 1.jpg
후보 박정희 윤보선
정당 민주공화당 민정당
득표수 4,702,640 4,546,614
득표율 46.6% 45.1%

5대 대선.png

시군별 우세지역 (당시 행정구역은 아님)
박정희
윤보선

선거전 대통령

박정희(권한대행)
민주공화당

대통령 당선자

박정희
민주공화당

목차

배경편집

5·16 군사 쿠데타로 민주당 정권이 붕괴되고 민정 이양의 형식으로 실시되기로 했다. 1962년 12월 17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하여 권력 구조를 대통령제로, 선거 제도를 제1공화국의 직접선거제로 되돌려 놓았다.

야권의 상황편집

당시 야권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 이끌던 민정당, 허정 천 총리가 이끌던 신정당, 이범석 전 총리가 이끌던 민우당, 박순천 전 의원이 이끌던 민주당, 김재춘중정부장이 이끌던 자유민주당 등으로 분열돼있었다.

민정당, 신정당, 민우당 등은 국민의당으로 합당하고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으나 윤보선 측과 허정 측이 서로 양보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

송요찬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박정희의 군선배이지만 오히려 박정희의 민정참여와 민주공화당 창당 등에 비판적이었다.

장면이 정치활동 규제상태에 있자 제2공화국에 집권했던 민주당 신파를 계승한 민주당은 당초부터 후보를 내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민정당의 윤보선에 적극 지지입장도 아니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시도편집

민주당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4·19 혁명 이후 과도정부의 내각을 이끌었던 허정은 야권통합과 단일후보를 시도했다.

당초 윤보선 전 대통령은 야권 통합을 위한 단일화를 선언, 민정당 측 후보로 김도연이 나서게 됐으나, 김도연은 허정을 상대로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하에 다시 윤보선이 나섰다.

그러나 윤보선 측과 허정 측은 끝내 단일 후보를 정하지 못했고, 결국 둘 다 출마하게 되면서 야권 통합은 실패로 끝났다.

선거 운동 기간편집

선거전은 초반부터 5·16 군사쿠데타의 주동자였던 박정희와 제2공화국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의 양강 대결구도로 전개되었다. 선거가 종반전으로 가면서 약세가 뚜렷하던 허정 후보가 10월 3일, 송요찬 후보가 10월 12일에 각각 사퇴하면서 윤보선 지지를 선언하였으나, 선거 초기에 야권단일후보의 기대를 모았던 허정이 이미 약세가 현저히 드러난 상황에서 뒤늦게 사퇴함으로써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사퇴후보의 지지선언에도 불구하고 경합양상이 계속되자 윤보선 후보측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으며 색깔론을 제기했으나,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훗날 박정희 정부 하에 투옥되기도 하는 임헌영은 자신은 당시 윤보선이 박정희가 좌파라며 공격하는 것을 보고 주변인들에게 박정희를 찍으라고 운동하고 다녔다고 술회하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어 당시의 진보 세력들의 한계를 느끼게 해준다, 윤보선의 매카시즘이 오히려 자신을 낙선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편집

정당 후보 슬로건[1]
민주공화당 박정희 새 일꾼 바로 뽑아 황소 같이 부려보자
민정당 윤보선 군정으로 병든 나라 민정으로 바로잡자
국민의당 허정 총칼로 망친 살림 내 한 표로 바로잡자
자유민주당 송요찬 다 죽겠다 갈아치자
추풍회 오재영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 길 찾자
정민회 변영태 바른 사람 바로 뽑아 나라 일 바로잡자
신흥당 장이석 새 사람 나왔다

선거편집

박정희는 46.6%를 획득해 45.1%를 획득한 윤보선에게 1.5%의 매우 적은 득표율 차이로 겨우 승리했다. 두 후보의 표차는 15만 6026표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근소한 표차였다.

선거 이후와 의미편집

이 선거는 5·16 군사쿠데타의 심판 성격이 강했으며, 이 선거를 통하여 박정희는 군사 정변을 통해 장악한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남여북야(南與北野)의 지역 대결 구도를 나타냈다. 서울, 경기, 강원지역에서는 윤보선을, 영남호남에서는 박정희를 압도적 표차로 지지하였다. 충청부산에서는 두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비슷했다.

안보 문제에 민감한 강원도 등 휴전선 접경 지역에서는 윤보선이 승리했으나, 남쪽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야당 강세 지역도 내어주게 된 것이다. 한국민주당의 아성으로, 제1·2공화국 내내 민주당계 보수 정당의 텃밭과도 같았던 호남에서 진보 개혁 세력의 지지를 받은 박정희가 승리한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는데, 이는 여수·순천 사건 등으로 색깔론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데다 혁명 정부의 중농정책이 농업이 발달한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데 주효했던 탓으로 분석되었다.[2]

혁신계 세력이 많은 영남, 특히 한국전쟁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본 경남 지역 역시 박정희에 대한 윤보선의 사상 공격이 포항과 경주 등 한국 전쟁의 피해가 컸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선거전 중에 윤보선이 사상 문제를 제기한 직후 여론조사를 돌린 결과 박정희 후보의 지지율이 내려가긴 했으나 좌익 유권자가 많은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급상승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2]

선거 결과편집

득표순위 기호 이름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3 박정희 민주공화당 4,702,640       46.6%  
2 5 윤보선 민정당 4,546,614     45.1%
3 4 오재영 추풍회 408,664    4.1%
4 7 변영태 정민회 224,443    2.2%
5 1 장이석 신흥당 198,837    2.0%
- 2 송요찬 자유민주당 - - 기권
- 6 허정 국민의당 - - 기권
선거인 수 12,985,015
총투표수 11,036,175               
투표율 85.0%
  • 득표율은 총투표수 대비 백분율을 가리킨다.

지역별 득표수편집

장이석 박정희 오재영 윤보선 변영태 합 계
서울   10,537   371,627    20,634     802,052    26,728           1,231,578
경기    27,554    384,764   54,770      661,984   34,775            1,163,847
강원   24,528    296,711   35,568       368,092   24,924            749,823
충남    23,359     405,077   47,364       490,663   26,639              993,102
충북   14,971    202,789   26,911       249,397   15,699            509,767
전남    22,604      765,712    51,714     480,800   17,312              1,338,142
전북    18,223       408,556   27,906      343,171    18,617                826,473
부산   3,419      242,779    11,214       239,083   7,106               503,601
경남   16,014      706,079   60,645   341,971    19,323           1,144,032
경북    34,622     837,124    58,079     543,392    31,113              1,504,330
제주   3,006     81,422   3,859      26,009    2,207             116,503
  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19년 4월 25일에 확인함. 
  2. 강준만 (2004년 9월 23일).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인물과사상사. ISBN 9788988410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