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데카니사 전역

도데카니사 전역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네카니사 전역은 연합군이 살로 공화국이 지배하는 도데카니사 제도를 1943년 9월 이탈리아 왕국의 항복 이후 점령하려는 시도였다. 연합군은 이 제도를 점령한 이후 발칸 제도에 있는 독일군에 대항하는 기지로 사용하려고 했었다. 연합군의 노력이 2개월 간 독일군에 의해 도데카니사 제도가 점령되면서 실패로 끝났고, 연합군은 수많은 병력과 함선을 잃었다. 도데카니사 전역은 1943년 9월 8일부터 1943년 11월 22일까지 일어난 전역으로, 독일군이 유럽 전구의 마지막 몇 해 동안 일어난 전투 중 승리를 거둔 몇 안되는 전투 중 하나였다.

도데카니사 전역
지중해 전구의 일부

도데카니사 제도의 위치
날짜1943년 9월 8일 - 1943년 11월 22일
장소
결과 독일군 승리
교전국

영국 영국
폴란드 폴란드 서부군
그리스 왕국 그리스 왕국
남아프리카 연방‏‎ 남아프리카 연방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

나치 독일 나치 독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살로 공화국
지휘관

영국 로버트 틸니

이탈리아 왕국 이니고 캄피오니

나치 독일 프리드리히 뮐러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마리오 솔데렐리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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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데카니사 제도는 에게 해 남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 이후 이탈리아령이었다. 이탈리아의 통치 기간 동안 전략적으로 위치한 이 섬은 동지중해에서 이탈리아 제국의 관심을 샀다. 제도 중 가장 큰 섬은 로도스섬이었고, 이 섬은 주요한 군용 및 항공 기지였다. 레로스 섬은 수심이 깊은 라키 항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휘 하에 견고한 항공기지로 변했다. 1941년 4월, 그리스 공방전 이후 크레타를 잃은 연합군은 그리스 및 그리스 소속 제도와 군도들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1943년 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추축국 군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킨 후 윈스턴 처칠갈리폴리 전역을 경험한 바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군은 추축군을 전진 기지에서 몰아내고 중립국 터키의 참전을 요구하기 위해 도데카니사 제도 및 크레타 섬에 대한 탈환전을 계획한다. 이는 처칠이 좋아하는 아이디어인 발트 함대에 대한 대안으로 다르델네스 해협을 통해 소련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1]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처칠은 그의 사령관들에게 계획을 짜라 지시했다.[2]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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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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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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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tony Beevor, Crete, The Battle and the Resistance
  2. Anthony Rogers (2007), p.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