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
두서(杜恕, 198년 ~ 252년)는 중국 삼국 시대 조위의 관료로, 자는 무백(務伯)이며 경조윤 두릉현(杜陵縣) 사람이다.[1]
행적
편집두기(杜畿)의 아들이다.
부친 사후 부친의 작위인 풍락정후(豊樂亭侯)를 물려받았으며, 유주자사(幽州刺史) · 건위장군(建威將軍)에 임명되었다. 태화(太和) 연간에는 산기황문시랑(散騎黃門侍郞)이 되었다.[1]
평소 꾸밈이 없고 강직하며 정론을 펼쳤기 때문에, 시중(侍中) 신비(辛毗)등이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지방에 있을 때에는 부친처럼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중앙에서는 그 성격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가평(嘉平) 원년(249년), 정북장군(征北將軍) 정희(程喜)의 탄핵을 받아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유배지에서 《체론(體論)》·《흥성론(興性論)》을 저술하였고, 가평 4년(252년)에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