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쓰청

량쓰청(중국어: 梁思成, 병음: Liáng Sīchéng, 양사성, 1901년 4월 20일~1972년 1월 9일)은 중화인민공화국건축가이다. 2000년 중국건축학회(ASC)는 중국의 건축을 알리기 위하여 중국 건축 교육의 현대적 시스템의 창시자인 량쓰청 교수의 이름을 따 양사성 상을 세웠다.

일대기편집

1901년 4월 20일 도쿄에서 량치차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5년 칭화 대학에 들어가 1923년 졸업하였다.

1923년 여름 미국 유학을 준비하였다. 당시 5월 7일은 국치 기념일이어서 베이징 학생들은 관례대로 천안문에서 기념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정오 무렵 량쓰청과 아우 량쓰융은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가 둘이 난창제 입구를 지나갈 때 빠른 속도로 달리던 소형 지프차가 그들을 들이받았다. 량쓰청은 오토바이 아래 깔렸고, 이날의 심각한 교통사고로 인해 중상을 입고 왼쪽 다리가 부러졌으며 척추도 부상당했다. 사고를 낸 당사자는 사고 후 이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현장에서 뺑소니를 쳤으나 나중에 수사를 통해 사고 당사자가 북양 정부 육균부 차장 진융옌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당시 총통인 리위안훙이 직접 나서서 사죄를 하고 나서야 사건이 진정되었다.

1924년 6월 아내 린후이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둘은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가서 건축학 공부를 준비하였다. 린후이인은 건축학과에서 여학생을 받아들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미술과를 선택하였지만 량쓰청은 이해 가을 건축학과 본과에 입학하였고 1927년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연구했으나 박사 과정을 마치지 않았다.

1928년 린후이인(林徽因)과 캐나다 밴쿠버에서 결혼하였다.

중국에서 건축가와 교수로 일하다가 미국 예일 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1946년 칭화 대학에 건축학과를 설립하였다.

1972년 1월 9일 사망하였다.

2012년 1월 량쓰청과 린후이인 부부의 베이징 옛 집이 부동산 개발상에 의해 기습 철거당해 논란이 되었다. 베이징 동청구의 베이쭝부 후퉁에 있던 중국 전통 가옥 사합원 양식의 이 집은 중국 문화 유적 보호 운동의 상징이다. 량쓰청 부부가 1930년대에 세들어 살며 활발한 활동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량쓰청 부부는 1949년 공산당 정권이 들어섰을 당시 옛 성벽 등이 그대로 남아 있던 베이징 옛 도시를 그대로 보존하고, 정치·행정 기능을 가진 신도시는 따로 건설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성벽과 성문을 모두 철거하고 도로를 냈다. 이들 부부가 살던 집도 베이징 옛 도시와 같은 운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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