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초상화

모나리자(영어: Mona Lisa) 또는 라 조콘다(이탈리아어: La_Gioconda, 프랑스어: La_Joconde)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초상화로,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나"(mona)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이고, "리자"(Lisa)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이다. 즉, 한국어로 하면 "리자 여사"라는 뜻이 된다. 이탈리어로 "라 조콘다(Giocondo)"는 "조콘도의 부인" 또는 "명랑한 여자", "웃고 있는 여자"라는 뜻이다.[1]

모나리자
Mona Lisa, by Leonardo da Vinci, from C2RMF retouched.jpg
작가레오나르도 다 빈치, Terence Eden[*]
연도1503
매체포플러 나무에 유채
사조전성기 르네상스[*]
장르초상
크기53 x 77 cm
위치Salle des États
루브르 박물관 (1797 - )
소장프랑스
프랑수아 1세 (1519 -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걸작으로 여겨지는[2][3] 이 작품은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작품을 직접 보기위한 방문객이 가장 많으며[4], 가장 많이 언급되고, 가장 많이 노래되고, 가장 많이 패러디된 예술 작품"이다.[5] 수수께끼 같은 표정 때문에 말도많고 끓임없이 다른 작가들에 의해 모방되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그림이며 세상에 가장 많이 그리고 널리 알려진 그림이라는 유명세를 지니고 있지만 정작 이 작품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6] 알려진 몇몇가지 들은 대부분 후대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일뿐이다. 작업을 시작한 시기나 총 작업기간, 의뢰자나 모델의 정체등을 명확히 알수 없는 이유는 이 작품을 그리고 있을 당시에 그 과정을 적어놓은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7] 따라서 전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이 작품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매달리기도 하였다.[8]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작업을 처음 시작한것은 1503년경으로 추정되며 의뢰자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보관하며 틈틈히 작업하였던것으로 보여진다.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이주한후에도 조금씩 작업을 하여 1517년경에 프랑스에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눈썹이 없는것이 작품의 특징중 하나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며 이로 인하여 미완성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소장하고 있다가, 1797년부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었다.[9] 그러던중 1911년 8월, 루브르 미술관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빈첸조 페루자가 훔쳐서 이탈리아로 반출하였다. 피렌체의 골동품상에게 넘기려고 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며 발각되었고, 1914년 1월 프랑스에 반환되어 현재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

이 그림은 여러가지 면에서 선구적인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식인 유화기법을 사용했으며, 선을 부드럽게 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하여 엷은 안개가 덮인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구도는 당시에 가장 기본적인 초상화 구도였던 피라미드의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인물을 배경보다 높게 배치하는 방식은 오늘날 화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드문 방식을 사용하였다.[10]

작업 기간편집

1550년에 출간된 조르조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03년에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4년동안 작업에 매달렸지만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빈치는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1516년 여름에 프랑스 앙부아즈로 이주한 이후인 1517년까지 틈틈히 작업을 하였고 이 시기 전후로 완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150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작품의 의뢰를 수락한 것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자리의 말에 따르면 1503년 여름,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Francesco del Giocondo)라는 상인이 새로 지은 자신의 집 거실에 걸어 두기 위해 자기 부인의 초상화를 의뢰했다고 한다.[11]

그런데 이 작품은 의뢰자에게 전달되지 못했는데 이에 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의뢰를 받은 몇 달 뒤에 베키오 궁을 장식할 작품 주문이 들어와서 이 그림은 주문자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에게 전달될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두번째는, 그 당시 조콘도의 부인은 이미 아이 셋을 낳은 애 엄마였으나 조콘도가 원한 것은 23세로 아직 젊지만, 모성애 가득한 여인을 그려달라 하였다. 그러나 조콘도의 기대와 달리 왠지 무서운 배경속에 눈썹 없는 여인이 맘에 들지 않아 인수를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 눈썹이 없는 여인은 행실 나쁜 여인들을 가리키기도 했기 때문이다.[11] 또 다른 설은 다빈치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그림을 의뢰자에게 내 놓을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다빈치가 평생 동안 자신이 갖고 있게 된 것이다.

모델편집

모델이 누군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조르조 바사리에 의하면 그림의 모델은 1479년 피렌체에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나 16세에 상인인 프란체스코 디 바르토로메오 델 조콘도(Francesco di Bartolomeo del GiocondO)와 결혼한 리사 마리아 게라르디니이며,[12][13] 그녀의 자연스러운 미소를 얻기 위해 악사, 광대 등을 동원했다는 주장이 있다.[10] 그러나 미국 뉴욕 소재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의 릴리안 슈워츠 그래픽 컨설턴트는 모나리자의 그림이 다빈치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켜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여 모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14] 또 다른 이론인, 그림의 주제는 레오나르도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모델이 리자 델 조콘도(lisa del giocondo)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15]

모나리자의 아름다움과 매력, 그리고 후경의 풍경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모나리자를 관찰해보면 구도를 가로로 평행하게 배치된 팔은 안락의자의 팔걸이에 얹혀 있고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듯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팔이 너무 아래쪽에 배치되어서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하단부에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인물과 관람자 사이에 난간을 그려 넣어 그 둘 사이에 거리감을 조성하는 전통이 있었으나 모나리자는 난간 앞에 서있다. 인물이 눈에 훨씬 더 잘 들어는 플랑드리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앞쪽 아랫부분에 작은 난간을 두어 인물이 그 난간 위에 손을 얹고 있도록 묘사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난간을 그녀의 앞이 아닌 뒤에 배치하고 그 대신 팔로 방어 자세를 취하게 함으로써 어떤 틈도 없다.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를 관람자의 공간 속으로 끌어다 놓은 것이다.

다빈치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초상화를 완성을 했고, 사람이 흔적이 보이지 않는 태곳적 풍경은 훨씬 뒤에 천천히 구상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등받이 없는 1인용 안락의자에 독특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나리자와 이 풍경이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난 사고편집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그림들 중 하나라는 평가가 있다. 1962년에는 보험평가액이 1억 달러로 기네스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6] 이 작품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소장하다가, 1797년부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었다.[9] 그러던중 1911년 8월 21일 도난 사고가 발생하였다. 루브르 미술관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빈첸조 페루자가 모나리자를 훔쳐서 자기 집 난로 밑에 2년 동안 숨겨두었던 것이다.[17]

당시 이 사건은 여러 소문과 함께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특히 큐비스트의 음모설로 인하여 초현실주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피카소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13년 11월, 범인 빈첸조 페루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골동품상에게 50만 리라를 받고 그림을 넘기려 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보물을 되찾아온 민족 영웅으로 대접받았으나 재판을 받은후 12개월을 복역해야 했다.[17] 이탈리아는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반환했으며 현재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

논란편집

모나리자 그림에는 눈썹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것에 대해서는 눈썹을 뽑는 것이 당시 미의 기준이었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모델도 눈썹이 없는 상태였다는 주장과[18], 모나리자 작품이 눈썹을 그리지 않은 미완성작이라는 설이 있다. 모나리자를 연구한 엔지니어 파스칼 코트는 "모나리자 눈썹이 청소 중에 지워졌다"며 "모나리자의 눈 주위를 자세히 살피면 미세한 금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큐레이터나 그림 복원가가 눈 부위를 부주의하게 닦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19][20] 또한 라파일이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에는 기둥이 있었지만 다빈치의 그림에는 기둥이 없는 이유에 대해 '액자 제작자가 그림을 액자의 크기에 맞추기 위해 기둥 부분을 잘라내버렸다'는 주장도 제기된다.[21]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현재 그림과는 달리, 처음에는 머리를 묶은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또한 그가 그린 그림에는 붓 자국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22]

1919년에는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만 붙인 L.H.O.O.Q라는 작품을 그려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7년 8월에는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 초안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 초안의 밑그림에는 원래 손이 포개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23]

모나리자의 상반신 또한 4분의 3각도를 취하고 다 관람자를 향해 약간 목을 돌린 모습이다. 두 눈은 우리를 똑바로 내려다보듯이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의 눈에 우리가 다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 그림 하단부를 막고 있는 팔부터 눈에 이르기까지 모나리자가 관람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관람자는 그녀의 시선 아래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서양화 최초의 누드화라고 알려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베누스>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인물의 시선 아래 있는 것만 같은 느낌과 같이 <모나리자>에서 인물의 시선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후경을 잘 관찰해보면 비논리적인 점이 보인다. 관람자의 시점에서 볼 때 오른쪽에는 높은 산과 거울처럼 평평한 수평선이 왼쪽에 비해 다소 올라와있는 호수가 보인다. 반면에 왼쪽 풍경은 오른쪽보다 낮다 다시 말해 두 부분이 하나로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상 거기에 인물 자체와 모나리자의 미소에 의해 감춰지고 변형된 간격인 단절이 있다. 모나리자의 입술은 오른쪽으로 약간 올라가 있다. (좀 더 높게 그려진 오른쪽 풍경 쪽으로) 양쪽 두 풍경 사이의 불가능한 이행이 인물 속에서 바로 인물의 미소를 통해 실현되었다. 레오나르도는 오비디우스 예찬론자로 <변신 이야기>를 열심히 읽었다. 레오나르도는 오비디우스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미란 바로 덧없음, 즉 시간의 무상함이라고 생각했다.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헬레나는 ‘제 모습이 오늘은 아름답지만 시간이 흐르면 과연 어떻게 변할까요?’라는 말을 한다 이는 시간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에 바로 이런 우주적 사색과 통찰을 투영한 것이다. 바로 미소의 덕이기 때문이다. 미소란 덧없는 것으로 짧게 스치는 작은 웃음으로 얼굴에 잠시 머물 뿐이다. 또한 페드레티에 따르면 풍경에서의 다리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다리가 있다는 것은 강물이 있다는 것인데 강물은 덧없이 흐르는 시간의 상징이다. 이에 모나리자의 핵심 주제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바사리의 기록편집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

  1. 모니카 몸 두첸 <세계명화 비밀> 생각의 나무, 재개정판 3쇄, 2006.12.26, p74
  2. 〈The Theft That Made Mona Lisa a Masterpiece〉. 《All Things Considered》. 2011년 7월 30일. NPR. 2019년 2월 15일에 확인함. 
  3. Sassoon, Donald (2001년 9월 21일). “Why I think Mona Lisa became an icon”. 《Times Higher Education》. 
  4. 1년에 약 1천만명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직접 보기 위해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한다.
  5. Lichfield, John (2005년 4월 1일). “The Moving of the Mona Lisa”. 《The Independent》 (London). 2016년 11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6. 모니카 몸 두첸 <세계명화 비밀> 생각의 나무, 재개정판 3쇄, 2006.12.26, p62
  7. 모니카 몸 두첸 <세계명화 비밀> 생각의 나무, 재개정판 3쇄, 2006.12.26, p65
  8. 모니카 몸 두첸 <세계명화 비밀> 생각의 나무, 재개정판 3쇄, 2006.12.26, p64
  9. Carrier, David (2006년 5월 31일). 《Museum Skepticism: A History of the Display of Art in Public Galleries》. Duke University Press. 35쪽. ISBN 978-0822336945. 
  10. 박희수 평론가 (2007년 11월 1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gjgjgjgjhgwjhgjhgjhggjhgjgedjhgjgjg 0 “모나리자 미소 위해 악사·광대 동원했다”] |url= 값 확인 필요 (도움말). 위클리경향. 2009년 12월 13일에 확인함.  |url=에 라인 피드 문자가 있음(위치 79) (도움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1. 주경철 <유럽인 이야기 1> 레오나르도 다빈치 中에서
  12. 리자 마리아 게라르디니(Lisa Maria Gherardini), 생몰 : 1479-1542
  13. ““모나리자는 유부녀였다”…伊학자, ‘실존인물’ 주장”. 2004년 9월 14일. 2009년 12월 13일에 확인함. 
  14. "토리노의 수의는 다빈치의 '작품'"”. 연합뉴스. 2009년 7월 1일. 2009년 12월 13일에 확인함. 
  15. Roni Kempler: Who the Mona Lisa Is 2015, TXu 1-954-682, Google Site. View historni Kempler's contributions, Encyclopædia Britannica
  16. “Highest insurance valuation for a painting”. 《Guinness World Records》 (영어). 2017년 7월 25일에 확인함. 
  17. 주경철 <유럽인 이야기 1> 휴머니스트, p275
  18. McMullen, R. (1975). Mona Lisa: The picture and the myth. Boston: Houghton Mifflin. ISBN 0-333-19169-2
  19. 송한수 기자 (2007년 10월 23일). ““모나리자 눈썹 실수로 지워졌다””. 서울신문. 2009년 12월 13일에 확인함. 
  20. “네이버 뉴스”. 2004년 10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10월 18일에 확인함. 
  21.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09년 12월 13일
  22. 홍상희 기자 (2006년 9월 27일). “모나리자, 베일을 벗다”. YTN. 2009년 12월 13일에 확인함. 
  23. “화제의 ‘모나리자 초안’ 어떻게 검증했나?”. 서울신문. 2007년 8월 9일. 2009년 12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