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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구(文鍾龜, 일본식 이름: 平文鍾龜, 1884년 11월 16일 ~ 1952년 1월 28일)는 일제 강점기의 지주이자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관은 남평이다.

문종구
文鍾龜
조선총독부 전라북도 도의회 군산부 참사위원
(前 朝鮮總督府 全羅北道 道議會 群山府 參事委員)
임기 1910년 12월 9일 ~ 1920년 8월 26일
군주 무쓰히토 (일본)
요시히토 (일본)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본)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본)
사이토 마코토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 (일본)
사이온지 긴모치 (일본)
가쓰라 다로 (일본)
야마모토 곤노효에 (일본)
오쿠마 시게노부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본)
하라 다카시 (일본)
신상정보
출생일 1884년 11월 16일
출생지 조선 전라도 전주
사망일 1952년 1월 28일(1952-01-28) (67세)
사망지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
경력 前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前 한국민주당 최고위원
前 한국민주당 상임고문
정당 무소속

목차

생애편집

문익점의 18대손으로 본관은 남평이다.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유명한 부호였다.

가정에서 한문을 수학하여 정식 학력은 없으며,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식민통치의 자문 역할로 지역 유지들을 임명한 군산부 참사로 활동했다. 문종구는 전북 일대에 대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지주였다. 2006년에 발표된 일제 강점기 토지의 국가관리 개선방안에 대한 한 연구에서 친일파 인물의 토지보유 규모를 1억 3천여 평으로 추산했을 때, 문종구의 토지도 포함되어 있었다.[1]

군산농업 등 여러 기업을 운영하며 군산수리조합 설립위원, 임파수리조합 설립위원, 지방금융조합 설립위원, 권업위원 등을 지냈고, 옥구 진명학교 총무도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고, 1941년 발족한 조선임전보국단에도 가담하였다.[2]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했을 때 생존해 있어 조사를 받았으나, 반민특위가 습격을 받고 해체되는 과정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처벌은 받지 않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부문에 모두 포함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아들인 문원태도 들어 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김병규 (2006년 1월 3일). “"친일파 보유토지 京城 면적 13배"”. 연합뉴스. 
  2.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393쪽쪽. ISBN 899533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