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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48인

1920년 7월 12일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3.1 운동에 참가한 민족대표 48인 공판에 관한 기사문이다.

민족대표 48인1919년 3·1 운동기미독립선언서의 기초와 서명, 인쇄 및 배포, 탑골공원 만세 시위 등 3·1 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참가한 핵심 인사 48명이다. 보통 민족대표 33인 외에도 3·1 운동의 계획과 조직에 가담하거나 연락한 인물들을 추가하여 설정한다. 이는 출국이나 교통편 등으로 미처 연락이 닿지 못한 민족대표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고려한 의견이기도 하다.

본래는 이 사건으로 일본 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48명, 즉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3·1 운동 직후 해외로 망명하여 체포되지 않은 김병조와 재판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구금 중 사망한 양한묵을 제외한 31인에 박인호 등 17인을 더한 인원을 가리키나, 편의상 민족대표 33인에 15~16인만 더해서 민족대표 48인, 중앙지도체 48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가운데 최남선현상윤이 추후 친일 행위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오르는 등 친일파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명단편집

민족대표 48인 일람편집

  • 민족대표 31인 외 17인
종교 이름 생년 몰년 출신 지역 신분 형량 이후 행적 건국훈장 훈격 서훈 년도
천도교 박인호 1864 1940 충남 예산 천도교 4세 교주 무죄 천도교 교역 독립장 1990
김홍규 1876 1959 전북 김제 천도교 신자 (보성사 공장감독) 징역 1년 - 애국장 1990
노헌용 1866 ? 황해 곡산 천도교 중앙총부 금융관장 무죄 - - -
이경섭 1874 ? 황해 곡산 천도교 봉훈 징역 1년 6월 - 독립장 1962
한병익 1895 ? 황해 수안 천도교 신도 징역 1년 - - -
기독교 김도태 1891 1956 평북 정주 명신학교 교사 무죄 휘문고보 교사, 친일 행적 애국장 1990
안세환 1892 1927 평남 평원 평양 기독교서원 총무 무죄 복역 후유증으로 사망 독립장 1963
함태영 1873 1964 함북 무산 세브란스예배당 조사 징역 3년 목회 활동 독립장 1962
김원벽 1894 1928 황해 은율 연희전문 3년생 징역 2년 언론 활동 독립장 1962
김세환 1889 1945 경기 수원 삼일여학교 학감 무죄 교육사업 독립장 1963
일반 임규 1867 1948 전북 익산 경성부 일본어 교사 무죄 - 애국장 1990
송진우 1890 1945 전남 담양 중앙학교 교장 무죄 언론 활동 독립장 1963
현상윤 1893 1950 평북 정주 중앙학교 교사 무죄 변절 - -
최남선 1890 1967 한성 출판업 징역 2년 6월 변절 - -
강기덕 1886 ? 함남 원산 보성법률상업전문 3년생 징역 2년 한국전쟁 중 입북 독립장 1990
정노식 1891 1965 전북 김제 재일 유학생 무죄 광복 후 월북 - -
김지환 1892 1972 평북 정주 일본 유학 후 귀국 무죄 - 독립장 1963

관련 항목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