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이씨
밀양 이씨(密陽 李氏)는 경상남도 밀양시를 본관으로 한 한국의 성씨 관향이다.
나라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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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경상남도 밀양시 |
시조 | 이모심(異牟尋) |
중시조 | 이응보(異膺甫), 이유충(異惟忠), 이선정(異善貞) |
집성촌 | 경상남도 밀양시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읍내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일대 |
주요 인물 | 이채현, 이흥원, 이순, 이수홍, 이하윤, 이은혜 |
인구(2000년) | 1,730명 |
역사
편집중국 당(唐)나라 황조 제9대 군주 덕종(德宗)의 치세 시절(783년)에 운남왕(雲南王)이라는 작위(봉호)에 책봉까지 되었던 자였던 운남왕 이모심(雲南王 異牟尋)이라는 이가, 결국 791년 음력 춘(春)여월 당시, 당나라 시대 시절의 작위까지 차라리 모두 내던지다시피 하고 결국 자신의 가내 식솔들[1] 일행과 모두 같이 함께 윈난 소재 쿤밍 지역을 차라리 마지막으로 등지고 출국(出國)하는 등 그렇게 마지막으로 당나라를 떠났으며, 그렇게도 결국, 신라 원성왕(新羅 元聖王)의 치세 시절이던 동년도(791년) 음력 유월 당시에 신라(新羅)로 건너와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으로 정착까지 한 이후에, 그로부터 5년 훗날 796년 음력 현월, 신라(新羅)에 귀화까지 하여 이모심(異牟尋)이 밀양 이씨(密陽 異氏)라는 관향(성씨 본관)을 성립하였고, 시조라는 이모심(異牟尋)의 먼 직손(먼 직계 후손)인 1세 중시조라는 이응보(異膺甫)는 고려 현종(高麗 顯宗)의 치세 시절이던 1116년부터 1127년까지 좌복야(左僕射)를 지냈으며, 1세 중시조 이응보(異膺甫)의 자녀들 중(中)에서도, 적장자(嫡長子)인 2세 중시조라는 이유충(異惟忠)은 고려 문종(高麗 文宗)의 치세 시절이던 1153년부터 1158년까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고, 서차남(庶次男)인 3세 중시조라는 이선정(異善貞)이라는 자 또한 고려 문종의 치세 시절이던 1154년부터 1162년까지 안서도호부사(安西都護府使)를 지냈다.
인물
편집분적 및 분파
편집밀양 이씨(密陽 異氏)의 분파(분적된 성씨 관향)로는 남원 이씨(南原 異氏), 동성 이씨(童城 異氏), 훈착 이씨(熏錯 異氏), 동월 이씨(童越 異氏), 청양 이씨(靑陽 異氏) 등이 있다.
후손
편집주요적인 인물로는 고려 공민왕(高麗 恭愍王)의 치세 시절이던 1360년부터 1373년까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및 판도판서(判圖判書)·판례부사(判禮部事)를 지낸 이흥원(異興遠), 고려 우왕(高麗 禑王)의 치세 시절이던 1384년부터 1386년까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원외랑(員外郞)을 역임한 이순(異詢), 고려 공양왕(高麗 恭讓王)의 치세 시절이던 1389년부터 1391년까지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및 이부시랑(吏部侍郞)·문하시랑(門下侍郞)·동평장사(同平章事)를 지낸 이수홍(異垂弘) 등이 있다.
그 이외에도 먼 훗날 대한제국·일제강점기 시대의 작가 및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겸 덕성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석좌교수 출신의 이하윤(異河潤)은 시인 겸 영어영문학자 및 수필가 겸 대학 교수 등을 지냈으며, 역시 일제강점기 시대의 기독교 신자(개신교도) 출신의 전직 경성 이화여학교(이화학당)의 교사 출신의 철학자 겸 교육인 출신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 겸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객원교수 등을 역임한 대학 교수 이은혜(異恩惠)는 1937년 10월 8일 결혼하여 윤치영(尹致暎, 전직 대한민국 초대 내무부 장관 역임.)의 4번째 부인이 되었다.
각주
편집- ↑ 차남 이채현(李采縣, 이모심 둘째 아들 이채현)과 그(이채현)의 직계 일가족들만 대동 동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