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균 (1919년)

만주 참전 군인,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기업가

박동균(朴東均, 1919년 1월 29일[1] ~ )은 만주국대한민국의 군인이며, 예편 후에는 기업인으로도 활동했다.

박동균
朴東均
출생일 1919년 1월 29일(1919-01-29)(105세)
출생지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명천군
본관 함양(咸陽)
종교 유교(성리학)
복무 일제강점기 만주군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43년 ~ 1962년
근무 육군본부 군의무감실
최종계급 만주국군 : 상위 상위(上尉)
대한민국 국군 : 소장(少將)
지휘 육군본부 군의무감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기타 이력 내과 군의관 출신
대한염업주식회사 사장
서울중앙청과주식회사 사장

학력 편집

생애 편집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이다. 만주육군군의학교를 제7기로 졸업하고 만주군 군의관이 되어 복무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군정 지역으로 내려와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에 참여했다. 원용덕, 신학진 등과 함께 대표적인 만주군 군의관 출신의 국군 장교였다. 간호장교 제도를 창설[2] 하는 등 국군 창설 단계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군의학교 교장을 지내며 간호사관생도 교육에 힘써 생도들이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따랐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3] 간호사관생도 제도는 국군간호사관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국방부는 1948년 12월 15일, 육군본부 의무국장이던 박동균 등 8명의 중령을 대령으로 특진발령하였다.[4] 이후 대한민국 육군에서 통위부 의무국장, 육군본부 의무감, 육군의무기지사령관, 국방부 병무국장, 수도육군병원장 등을 지냈으며, 최종 계급은 육군 소장이었다. 한국 전쟁 휴전 직후에는 서울위수사령관에 임명되기도 했다.[5]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이듬해 1962년을 기하여 예비역에 편입되었고, 1963년에 군사정변 세력이 설립한 국영기업체인 대한염업주식회사 사장에 임명되어 이후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서울중앙청과주식회사 대표이사도 역임하였다.

참고 자료 편집

각주 편집

  1. “박동균”. 엠파스 인물정보. 2008년 7월 12일에 확인함. 
  2. 편집부 (2000년 4월 25일). 〈2. 여성운동과 사회봉사활동 - 장경희〉. 《이야기여성사 (1)》. 서울: 여성신문사. ISBN 89-85554-46-8. 
  3. 조귀례,(정리) 문창재 (2006년 11월 6일). “<491>군복입은 하얀 천사들-36-굴곡진 간호장교 수급”. 국방일보. 2008년 7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陸軍八中領昇進”. 동아일보. 1948년 12월 31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5. “서울위수사령관에 朴東均소장을 임명”. 조선일보. 1953년 9월 26일. 2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