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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병(朴弼秉, 일본식 이름: 松井弼秉, 松井英治, 1884년 5월 2일 ~ 1949년 9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호는 혜석거사(蕙石居士)이다.

생애편집

경기도 안성군 출신으로 이 지역의 유명한 부호였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안성 지역 최고의 기업인으로서 안성을 대표하는 기업을 다수 소유하고 있었다.[1] 2006년에 발표된 일제 강점기 토지의 국가관리 개선방안에 대한 한 연구에서 친일파 인물의 토지보유 규모를 1억 3천여 평으로 추산했을 때, 박필병의 토지도 포함되어 있었다.[2]

1920년대에 면협의회원으로 시작하여 1927년 이후 경기도 도회의원을 지내는 등 지역 유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박필병의 사재를 기증받아 1939년에 개교한 안성농업학교는 이후 안성농업고등학교, 안성농업대학, 안성산업대학을 거쳐 한경대학교로 발전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조선임전보국단에 가담[3] 하였고, 중추원 참의로도 발탁되었다.

안성농업학교 설립으로 인재 육성에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국민훈장 목련장이 추서되었다.[4]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에 모두 포함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상록 외 (2006년 5월 24일). 〈억제된 균열 (허영란)〉. 《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울: 책과함께. ISBN 8991221165.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 김병규 (2006년 1월 3일). “"친일파 보유토지 京城 면적 13배"”. 연합뉴스. 
  3.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390쪽쪽. ISBN 8995330724.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4. 이명종 (2003년 2월 22일). “안성농업학교 설립 故박필병씨 국민훈장 목련장”. 경일인보. 2008년 7월 1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