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엽

대한민국의 육군 장성, 교육행정가

백인엽(白仁燁, 1923년 2월 18일(1923-02-18) ~ 2013년 12월 14일(2013-12-14))은 대한민국의 군인, 교육행정가이다.

백인엽
白仁燁
Korean War - 60th Anniversary Photo Archive - ROK 17th Regiment commander Col. Paik, Inyup conveying an order on a warship (Flickr id 14714990316).jpg
대한민국 국방부 부참모장
임기 1955년 9월 30일 ~ 1955년 12월 26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함태영
장관 손원일 국방부 장관
차관 김용우 국방부 차관
신상정보
출생일 1923년 2월 18일
출생지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
사망일 2013년 12월 14일(2013-12-14) (90세)
사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본관 수원(水原)
경력 선인학원 이사장
인하대 행정학과 초빙교수
정당 무소속
부모 백윤상(부), 방효열(모)
배우자 주광숙
별명 호(號)는 운봉(雲峰)
종교 개신교
군사 경력
군복무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43년 ~ 1960년
최종계급 ROK army Jungjang.svg 중장(中將)
지휘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국 국장
근무 육군본부
참전 한국 전쟁

이력편집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호(號)는 운봉(雲峰)이며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대동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이후 1926년 일가족과 함께 평안남도 평양으로 이주하여 주로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 주요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휴전 이후에는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국 국장으로 재직시 1960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며 선인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합동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白善燁)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2013년 12월 14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학력편집

군경력편집

  • 1943.03. : 일본군 항공소위
  • 1946.01. : 대한민국 국방경비대 참위(대한민국 육군 소위) 임관
  • 1948.02. : 육군 제1보병연대 부연대장
  • 1948.11. : 육군 제17보병연대 연대장
  • 1950.08. : 육군 수도보병사단 사단장
  • 1950.10. : 육군 준장 진급, 육군본부 정보국 국장
  • 1951.01. : 육군 제1훈련소 소장
  • 1952.01. : 육군 제6보병사단 사단장
  • 1952.11. : 육군 소장 진급
  • 1954.06. : 육군 제9보병사단 사단장
  • 1955.05. : 육군 제2훈련소 소장
  • 1955.09. : 육군 제2훈련소 소장 재직 시절 육군 중장 진급(1955년 9월 초순)
  • 1955.09. : 육군 제2훈련소 소장 보직에서 대한민국 국방부 부참모장 보직으로 전보(1955년 9월 하순)
  • 1955.12. : 육군본부 기획참모부 부장
  • 1956.04. : 육군 제1군단 군단장
  • 1956.09. : 육군 제6군단 군단장
  • 1959.02. : 육군본부 관리참모부 부장
  • 1959.08. :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국 국장
  • 1960.06. : 전역

선인 학원 비리편집

선인학원 설립자인 백인엽의 전횡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인근 주민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침해하고, 특히 부지 확장 과정에서 중국인의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 버려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백인엽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교직원들을 무조건 해고하고, 교사들에게 예비군 군복을 입혀서 보초를 서게 하고 순찰을 돌게 했다. 또한 돈을 받고 부정 입학·편입을 시키고 심지어 졸업장을 팔기까지 하였다. 신문에서는 이러한 백인엽의 활동을 ‘인천의 무법자’라고 표현하였다.

부정 비리가 적발되어 백인엽 이사장은 선인 학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구속되었지만 석방 이후에도 계속 주인 행세를 하면서 배후 조종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1990년대 ‘범(汎)선인 학원 정상화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학원 정상화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는 인천의 시민운동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백인엽은 1993년 6월 ‘[인천 대학교의 학교 법인인] 선인 학원의 공립화를 조건으로, 설립자로서의 권한 일체를 인천직할시장에게 기증한다.’라는 내용의 기증서를 당시 최기선 인천직할시장에게 전달함으로써 선인 학원은 운영하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전문대 등 열 세 곳과 함께 시립으로 전환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시립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시립화 이후 인천 대학교를 비롯한 학교들이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2012년 인천 대학교는 국립 대학으로 법인화가 허가된 상태이다.

당시 인천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했던 이갑용 인천 대학교 부총장은 “설립 초기에는 개강하는 날부터 시위를 시작했기 때문에 수업은 늘 여름방학에 했다.”라며 “대표적인 문제 사학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백인엽은 인천 대학교를 설립한 지 2년 만인 1981년 1월 당시 교육부의 감사에서 2년 동안 선인 학원 산하 각급 학교(당시 16개)에 무려 9,900여 명을 불법으로 편·입학시키고, 공금 7억 5000여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되어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관련 항목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김형일
제2대 특무부대장
1950년 12월 15일 ~ 1951년 1월 13일
후임
이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