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
복상(卜商)은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자(字)는 자하(子夏)이다. 문학(文學)에 있어서 자유와 함께 공자의 중요한 제자였다.[1][2]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근면하고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평가된다. BC483년 그는 노나라로 건너와 공자에게서 수학하였다. BC476년 진나라 서하 지방(지금의 섬서성 위남시)으로 귀향했다.
시경에 조예가 깊었다. 주역을 주석및해설한 자하역전(子夏易傳)이 전하나[3] 후대의 가감 및 위작이 거론되고있으며[4] 그러나 역사적 관례로 그의 저서로 언급되고 있다. [5]
이극(李克), 오기(吳起), 서문표(西門豹)가 모두 자하(子夏)에게서 수학하였다.
논어에서 공자가 자하를 상(商)이라 칭하는 대목이 나온다.
배움
편집子夏曰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事君能致其身與朋友交言而有信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 (論語 學而 第一)
- 자하가 말하였다. “어진 이를 어진 이로써 대우하기를 마치 여색을 대하는 것과 바꿀 정도로 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 그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김에 있어 그 몸을 다할 수 있으며, 벗과 사귈 때 말에 믿음이 있으면 비록 배움이 없다고 이르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자라고 여길 것이다.” (논어 학이 제일)[6]
예(禮)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논어 선진편 (위키문헌 논어/선진제십일 , 11-2)
- ↑ (위키문헌 사기) 열전-사기/권067 -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 ↑ 위키문헌 자하역전
- ↑ (위키문헌 中文)舊本題卜子夏撰。案說易之家。最古者莫若是書。其僞中生僞。至一至再而未已者。亦莫若是書。唐會要載開元七年詔。子夏易傳。近無習者。令儒官詳定。劉知幾議曰。漢志易有十三家。而無子夏作傳者。至梁阮氏七錄。始有子夏易六卷。或云韓嬰作。或云丁寬作。然據漢書韓易十二篇。丁易八篇。求其符合。事殊隳剌。必欲行用。深以爲疑。司馬貞議亦曰。案劉向七略。有子夏易傳。但此書不行已久。今所存多失眞本。荀勖中經簿云。子夏傳四卷。或云丁寬。是先達疑非子夏矣。又隋書經籍志云。子夏傳殘闕。梁六卷。今二卷。知其書錯繆多矣。又王儉七志引劉向七略云。易傳子夏韓氏嬰也。今題不稱韓氏。而載薛虞記。其質粗略。旨趣非遠。無益後學云云。是唐以前。所謂子夏傳。已爲僞本。晁說之傳易堂記又稱。今號爲子夏傳者。乃唐張弧之易。(案弧唐末爲大理寺評事。有素履子別著錄。)是唐時又一僞本並行。故宋國史志。以假託子夏易傳。與眞子夏易傳。兩列其目。而崇文總目。亦稱此書篇第。略依王氏。決非卜子夏之文也。朱彝尊經義考證。以陸德明經典釋文。李鼎祚周易集解。王應麟困學紀聞。所引皆今本所無。德明鼎祚。猶曰在張弧以前。應麟乃南宋末人。何以當日所見。與今本又異。然則令本又出僞託。不但非子夏書。亦並非張弧書矣。流傳既久。姑存以備一家云爾。 謹案唐徐堅初學記。以太宗御製升列歷代之前。蓋臣子尊君之大義。焦竑國史經籍志。朱彝尊經義考。並踵前規。臣等編摩四庫。初亦恭錄御定易經通注。御纂周易折中。御纂周易述義。弁冕諸經。仰蒙指示。命移冠國朝著述之首。俾尊卑有序。而時代不淆。聖度謙沖。酌中立憲。實爲千古之大公。謹恪遵彝訓。仍託始於子夏易傳。並發凡於此。著四庫之通例焉。 又案託名之書。有知其贗作之人者。有不知其贗作之人者。不能一一歸其時代。故漢書藝文志。仍從其所託之時代爲次。今亦悉從其例。
- ↑ 중국철학서전자와계획-子夏易傳《欽定四庫全書》本。本書11卷,拆分成4冊。 影印古籍 欽定四庫全書·經部一·易類
- ↑ 위키문헌, 논어, 학이 제일
- ↑ 시경(詩經)-국풍(國風)-위(衛) 석인(碩人) 碩人其頎,衣錦褧衣,齊侯之子,衛侯之妻,東宮之妹,邢侯之姨,譚公維私。 手如柔荑,膚如凝脂,領如蝤蠐,齒如瓠犀,螓首蛾眉,巧笑倩兮,美目盻兮。 碩人敖敖,說于農郊,四牡有驕,朱幩鑣鑣,翟茀以朝,大夫夙退,無使君勞。 河水洋洋,北流活活,施罛濊濊,鱣鮪發發,葭菼揭揭,庶姜孽孽,庶士有朅。(위키문헌)
- ↑ 위키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