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론(일본어: (ほく) (しん) (ろん) 호쿠신론[*])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대외팽창 노선에서 “북방 지역으로의 진출”을 주장한 노선이다. 반대 노선은 남진론이다.

1) 북사할린과 연해주
2) 몽골과 바이칼 방면
3) 이르쿠츠크 방면
4) 중앙시베리아 방면

북진론은 막말의 개명파 다이묘 나베시마 나오마사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고 이를 위해 수도를 아키타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기원을 둔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북진론은 청일전쟁에서 한반도와 요동반도를 제압한 후 발해만 연안에 상륙, 북경을 직접 침공하는 것을 의미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동아동문회대러동지회를 통해 북진론이 정책화되어간다. 또 재야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낭인 단체를 인솔하던 우치다 료헤이 등이 북진론을 주장했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 이북 소련을 침공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일본 육군, 특히 관동군의 사상적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1938년 장고봉 사건, 1939년 노몬한 사건 같은 대형 군사분쟁이 일어났다(소일 국경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