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푸리 선언
비푸리 선언(핀란드어: Viipurin manifesti, 또는 비푸리 호소문(핀란드어: Viipurin vetoomus)은 1906년 7월 22일 니콜라이 2세가 두마(의회)를 해산해 버리자 의원 일부가 시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수동적 저항을 요구한 것이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의 연장으로 여겨진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4/Former_Deputies_of_Russian_State_Duma_arrive_in_Vyborg.jpg/300px-Former_Deputies_of_Russian_State_Duma_arrive_in_Vyborg.jpg)
황제에게 불복한 의원들은 반란자로 여겨졌고, 두마 해산 다음 날 의회해산에 저항하는 의원들은 핀란드 비푸리(현 러시아 비보르크)의 벨베데레 호텔에 모였다.[1] 여기서 모이기로 한 것은 핀란드 대공국 총독부가 본국 의원들에 대한 관할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의 참여자들은 주로 카데츠와 트루도비키들이었다.[2]
선언문은 크게 세 가지를 시민들에게 요구했는데, 납세를 거부할 것, 병역을 거부할 것, 총(總)시민불복종에 참여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러시아의 새 총리가 된 표트르 스톨리핀은 비푸리 선언 연서명자들은 1907년 3월로 예정된 다음 두마 선거에 출마를 금지한다는 명령에 서명했다.[3]
각주
편집- ↑ Duumalla historialliset istunnot Taurian palatsissa Archived 2014년 10월 24일 - 웨이백 머신 28.4.2006. Turun Sanomat. Viitattu 24.10.2014.
- ↑ The First Duma. History Learning Site (Web Archive 2013). Viitattu 29.4.2020.
- ↑ The Second Duma. History Learning Site (Web Archive 2012). Viitattu 29.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