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 문서에서 제가 삭제한 부분은, 이미 본문에서 언급된 사실일 뿐만 아니라, 그를 토대로 개인이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추정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여 삭제한 것입니다. 가령, 그녀의 위치 상 대비의 자리에는 올라갈 수 없음에도 대비에 올라간다느니, 장희빈의 천하가 도래하였을 것이라느니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출처도 없을 뿐더러 나타나지도 않은 사실을 개인이 추정하여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독자연구를 지양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문장 또한 매우 길어 이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어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귀하께서 기여하신 편집을 다시 되돌렸음을 알려드립니다.--소심자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00:56 (KST)답변

희빈 장씨 편집

희빈 장씨가 폐출된 이후, 인현왕후가 복위하고, 인현왕후가 사망한 후에 인원왕후가 계비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럼, 이 때 인원왕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인원왕후는 경종 시대를 거쳐 영조 시대까지 살게 됩니다. 이 인원왕후는 아무 이유 없이 폐비가 되어야 합니까?

왕의 생모라 할지라도, 그 왕이 후궁 소생일 경우 그 생모를 왕비나 대비로 봉한 예는 광해군 시절의 공빈 김씨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마저도 당시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가 폐출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자리가 비어있어 가능했던 것이지요.

훗날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경우도, 엄연히 왕의 생모이고 살아서 아들이 왕이 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집안도 양반가이므로, 충분히 왕비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지요. 하지만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가 멀쩡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그저 후궁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어야 했습니다.

조선의 제왕은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합니다. 동시에 왕비(부인)이 두 명이나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혹 두 명의 왕비가 동시에 살아있었다 해도, 한 쪽이 폐위 등을 당하여 그 자리가 공석이어야 가능했던 일입니다.

제가 근거없이 억지주장을 한다고 하셨는데, 죄송하지만 귀하야 말로 아무런 근거 없이 아들이 대비에 봉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조선왕실의 법도나 관례 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억지주장입니다.

또, 위키백과는 누구나 찾아서 열람할 수 있는 백과사전입니다. 있는 사실에 기초하여 문서를 작성/편집해야지, 개인적인 추정에 의한 서술은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이 곳은 개인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

시중에 위와 같은 제도에 관한 서적도 많이 있으니, 관심 있으시거든 찾아서 읽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소심자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01:11 (KST)답변

비속어 사용을 자제하십시오. 편집

더불어 앞으로는 그러한 독자연구의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독자연구라는 단어를 변명의 수단으로는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소심자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01:19 (KST)답변

아, 편집

귀하께서야 말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편집에 임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위키백과:정책과 지침을 꼼꼼히 읽으신 후에 문서 작성/편집을 하시면 앞으로는 이러한 마찰이 없을 것입니다.--소심자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01:23 (KST)답변

모릅니다. 편집

그런 질문 하시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소심자 (토론) 2009년 5월 21일 (목) 01:30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