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럭비협회는 2007년 전신인 강남구럭비연합회로 강남구생활체육회에 정식으로 가입인준을 받아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당시 대한민국 체육계는 2개의 체육단체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하나는 에리트체육을 주관하는 대한체육회 하나는 생활체육을 주관하는 국민생활체육회이다.

2016년 대한민국 체육계의 오랜 숙원인 양대 체육단체 통합을 이루게 된다. 그로인하여 기존 생활체육회의 모든 명칭들이 지금의 협회로 명칭이 변경된다.

2007년 현 강남구럭비협회가 강남구생활체육회에 정회원으로 가입이 되고 그해 일본의 럭비클럽팀이 방한을 하여 서울럭비구장에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계기로 강남구럭비협회 회장 이기찬은 생활체육럭비 활성화를 위하여 다각적인 방법을 찾아 이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우선 서울을 포함한 경기, 인천 지역의 럭비동호인들의 규합을 하기 위하여 매주 일요일 한강시민공원 여의도 지구에 있는 여의도 럭비구장에서 매주 일요일 정기적으로 운동모임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서울 및 경,인 지역에 거주하는 럭비인들을 모으게 된다. 참여자는 내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운동모임을 떠나 생활체육 럭비인들의 권리와 럭비스포츠 활성화를 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인원들이 참여 하는 계기가 된다.

강남구럭비협회의 주도로 많은 럭비인들이 매주 모여 운동모임을 가게 되면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전국럭비연합회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로 전국규모의 럭비단체를 창립하게 되는 초석이 된다.

이기찬 강남구럭비협회 회장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럭비인들을 규합할 목적으로 (이는 순수하게 럭비활성화 및 럭비인 권리를 찾기 위함이다.) 전국의 럭비인들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이에 참석을 희망하는 전국의 럭비인들이 강남구청 회의실에 모여 대망의 전국럭비연합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게 이른다.

이와 동시에 같은 장소 같은 시기에 서울시럭비연합회를 창립하기 위한 노력을 같이 하였으며 참여 지역은 강남구,서초구,금천구,성북구 등이 구럭비연합회를 창립하고 서울시럭비연합회 준회원 단체를 설립한다. 다만 그 당시 서울시연합회 정회원 창립요건은 6개구 이상이 되야 정회원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2007년 매주 일요일 여의도럭비구장에서 모여 운동을 하던중 전국대회 개최를 하게된다. 제1회 한국럭비동호인럭비대회를 여의도럭비구장에서 이기찬 회장의 사비로 개최하고 (주)화이트진로의 도움을 받아 서울전역에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개시하게 된다. 서울전역에 개시된 대회 현수막은 총30여장의 현수막이 개시되었다.

볼품없는 전국대회 개최지만 전국의 많은 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럭비시합을 하게 되므로써 전국의 럭비인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개기가 된다.

이미 몇몇 지역에서는 지역 출신끼리 모여 소규모 모임은 행해지고 있었지만 전국적인 규모로 경기를 펼치는 자리는 제1회 한국럭비동호인 럭비대회가 최초로 세상에 기록되게 된다.

하지만 매주 일요일 여의도럭비구장에서 모임을 즐겼던 럭비인들에게 의기를 가져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중,장기적인 계획아래 한강르네상스 사업이 실시되면서 여의도럭비구장은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를 확인한 이기찬은 전국의 럭비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럭비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항의전화 및 민원제기 였다. 여의도럭비구장을 부득이하게 없어야 한다면 대체 운동장을 만들어 달라는 소박한 요청이였다.

이에 한강르네상스 사업 특화 2부에서는 수많은 항의전화 및 민원을 받게 되고 결국은 대체 부지 확보를 약속하고 강남구럭비협회 이기찬 회장과 대체부지 선정 계획을 수립하게 되며 그로 인하여 현 강남구 압구정도에 있는 잠원지구럭비구장에 대체 부지를 마련해주게 된다.

물론 모든 중심에는 이기찬 강남구럭비협회 회장이 주도 하였고 부지 선정 및 시설 설치 까지 모든 것을 진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