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장군 
                                                                  청산리 전투 (안개 전투)


                                       청산리 전투는 백운평, 완루구,천수평,어랑촌,고동하지역
                                            에서의 치룬 전투를 말한다.  일본 제 13,14사단과 혼합부대로 
                                            이뤄진 20만과 대한독립군 김시진장군,북로군정서 김좌진장군
                                            외 2만이 청산리에서 전투를 시작하게 되는데 1942년 10월 21일  
                                            백운평으로 진입한 일본 선발부대를 미리 매복한 김좌진.이범
                                           석부대는 일제 사격을 가한다. 매복과 지리적 이점에 전투초기
                                           에 일본 선발부대는 전세에 뒤지나 일본군의 집중공격에  김좌
                                           진.이범석부대는 와해 되버린다.  전투에 패배한 김좌진.이범석
                                           은 청산리에서 이탈하고  승리에 도취된 일본군은 완루구, 천수
                                           평 어랑촌 지역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 수가 대병력이다. 원래 
                                           청산리 지역은 안개가 자주끼는 골짜기가 많은 지역이다.

                                      안개가 끼게되면 언제 겉칠지 모르고 어떤지역은 몇미터 앞도식
                                           별하기 힘든 지역도 많아 일본군은 이 안개지역으로 대규모병력
                                           을 들어서게 된다. 전투상황을 살펴본 김시진장군은 수적으로
                                           상대할  상황이 아니고 김좌진과 이범석이 초면에 전투에 패하자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낸다.  
                                     일본 대규모 부대가 안개지역으로 들어오게끔 하고  김시진장군은

                                          대한독립군 부하들로 하여금 일본군 복장으로 변장하고 일본군부대 
                                          중간 중간에 잠입시킨다. 옆에서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니 일본군
                                          복장으로 변장한 독립군을 의심할리 없다.
                                     독립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사격을 가하는데 일본군은 독립군이 나
                                          타나 사격한줄 알고 사격을 하는데 그 전투가 치열할데로 치열하여
                                          일본군끼로 전투를 하게된 셈이 된다. 어떤 일본군은 안개지역에서
                                          육박전을 벌이고 서로 사격을 가하고  그 청산리전투의 안개지역은 
                                          일본군의 아수라장이 된다.
                                     일본군의 적군과 아군이 식별이 되지 않아 일본군들의 전투가 된
                                          셈이 되는데   20만 대규모 병력이 사실상 초토와 되버린다. 생존

                                          자는 1만 ~2만 정도이니 청산리 전투의 상황이 어떠한지 자명하게 
                                          되는데 일본의 이 참패로 전투상황을 축소 왜곡  시켜버린다. 1942
                                    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은 부상자를 이끌고 일본으로 

                                         물러간다. 일본군의 아시아 식민지화를  포기하게 되는데 일본군의
                                         완벽한 전쟁패배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