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배우는사람/문서:인도철학(Fundamentals of Indian Philosophy)/역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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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일반적으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으로 구분되어 왔다. 서양철학이 그리스의 핼레니즘과 셈족의 헤브라이즘의 만남과 갈등, 교류의 역사였다면, 동양철학불교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동아시아와 조우했던 인도철학중국철학으로 대표된다.

서양 편향적 교육에 젖어온 한국의 지식인들은 ‘철학’하면 먼저 소크라테스칸트, 마르크스를 연상하며, ‘동양철학’하면 공자, 노자, 주자 등을 떠올리지만 나가르주나다르마끼르띠, 샹까라우디야나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철학은 한 민족의 문화의 정수로서 위대한 민족에겐 반드시 위대한 철학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철학은 그것을 창조한 민족 특유의 개성과 기질, 사유 방식의 반영임과 동시에 그러한 특수성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이상, 세계관과 인생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양철학이나 중국철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듯이 인도철학으로부터도 이미 배운 것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서양이나 중국철학이 주지 못했던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인도는 토인비의 말처럼 동서의 가교이며, 조화와 관용의 나라이다. 인도철학에서 우리는 동양의 심오한 종교성과 신비주의, 그리고 서양의 합리성과 분석성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인도의 철학은 종교적이며 인도의 종교는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인도에서는 종교 없는 철학은 공허하고, 철학 없는 종교는 맹목이다. 철학 darsana이 눈이라면 종교 sadhana는 발이다.

궁극적 가치인 완전한 자유와 평화(=해탈, 열반)의 획득이라는 종교적 목적에 이르는 방법의 하나로서 철학은 실재 Tattva에 대한 인식과 사변을 추구하며, 다시 논리와 인식 자체에 대한 비판과 분석을 수행한다. 그리하여 인도는 희랍과 더불어 고대에 논리학을 학적으로 체계화시킨 두 민족 중의 하나이며, 또한 일찍부터 인식론 pramana-sastra을 존재론적 탐구의 예비학으로서 정립시켰다.

서양철학이 인물위주이고 직선적인데 비해 인도철학은 학파위주이고 병행적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관점과 입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그룹, 즉 학파를 형성하여 그 학파의 기본 개념과 체계를 간략한 암기용 문장으로 묶은 텍스트(=수뜨라)를 전승, 해석하고 주석하는 과정을 통해 사상의 내용이 정교해지고 풍부해져 왔다.

그런데 자학파의 사상을 천명하고 주장할 때 타학파의 관점이나 견해를 함께 고려하고 비판, 논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인도철학은 자학파의 견해만을 고집스럽게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타학파와의 끊임없는 상호 교류와 비판, 논쟁을 통해 변증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러므로 한 학파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대립적 입장에 있는 타학파의 관점과 견해, 그리고 양학파 사이의 논쟁을 이해해야 한다. 불교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불교가 그 안에서 발생, 성장해 온 주변적, 배경적 사상들을 무시하고 불교에만 폐쇄된 상태로는 불교사상의 특성과 진상이 명료히 드러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인도철학은 일반 지식인이나 철학도들의 지적 탐구를 위해서 분 아니라 불교학도들의 불교 자체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본서는 미국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해 온 뿔리간들라 PuligandlaFundamentals of Indian Philosophy의 국역이다. 이미 인도철학 관계의 개설서들이 수종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서를 추가하게 된 것은 인도철학이 초심자들이나 일반 철학도, 혹은 인도사상에 흥미를 느끼는 교양인들도 커다란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본 역서가 그러한 요구에 만족스럽게 부합될지는 의문이지만, 아쉬운 대로 소개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