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Mar del Este/스페인 제국

스페인 제국 편집

 

스페인 제국은 전 지구에 걸쳐 세력을 넓힌 최초의 근대적 제국이었다. 세계 역사 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 국가들의 대항해시대로서의 추구와 식민지 지배 확대를 통해 무역로를 대양을 통해 확보하고 대서양을 사이로 아메리카 대륙과 교역을 이루는 한편 태평양을 통해서는 동아시아멕시코,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역로를 넓혀간다. 정복자(콘키스타도르)들은 남미에 널리 세력을 떨치고 있던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을 무너뜨리며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체에 걸친 세력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는 지역 세력과의 유착으로 가능했다. 당시 스페인 제국은 항해시대의 강자로서 해양시대의 군주로 우뚝 서올라 뛰어난 화력으로 우위를 점했으며 16~17세기 스페인의 황금기를 누린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빌라르는 "인간의 역사상 가장 비범한 대서사시로서 활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표현한다.

아메리카에 세운 여러 교역의 시도는 실상 원주민에게 많은 재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식민지 개척자들 입장에서는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홍역이나 천연두 같은 병은 유럽인들을 통해 펴져 내륙에 거주하던 원주민의 삶을 피폐하고 멸절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아즈텐과 마야, 잉카 문명에서 대도시를 이루던 곳도 황폐하게 했다. 이는 경제적 상황을 더욱 악화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그 범위에 대해서는 정확성을 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논지가 없다.

 
신세계에 발을 디딘 콜럼버스

1520년대 멕시코의 과나후아토 지역에 풍부하게 매장돼있던 은매장량을 채굴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시도는 더욱 확대돼 멕시코의 사카테카스와 볼리비아의 포토시 지역에 1546년부터 채굴을 시작한다. 이러한 은의 채굴을 바탕으로 스페인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으며 사치품에서부터 곡물에 이르는 교역이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함부르크 스페인 왕가의 발전과 동시에 국력 향상에 많은 초점이 맞춰졌다. 북아메리카와 유럽 국가간의 전쟁이 빈번해지면서 왕실에서는 은을 통해 재력을 보충하는 일이 절실했으므로 경작농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고역과도 같은 일이었다. 17세기 중 몇 년 외에는 거의 이런 상황이 지속됐다. 스페인 자국 내(특히 카스티야 지방)에서 관세를 많이 벌어들였는데 경작농들은 세에 시달리는 한편 부유층들은 향락적인 생활을 즐겼다.

포르투갈 제국과 통합을 시작한 1580년(1640년 분리)부터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를 잃을 때까지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쳤으며 군사력으로서의 재평가와 여러 위협 속에서도 건재했다. 새로운 상황에 마주하면서 스페인 내에서는 군주와 자연론, 상호관계법 등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벌어졌으며 상당히 놀라웠던 것은 제국주의의 적법성에 대해서도 살라망카 대학 등에서 논해지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은 중세의 생각에서 뿌리를 둔다.

종교는 스페인 제국의 확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가톨릭이 원주민들에게도 뿌리 내릴 수 있다는 스페인인의 신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