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렬(徐相烈, 1854년~1896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대구, 자는 경은(敬殷), 호는 경암(敬菴), 당호는 춘수당(春睡堂)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서적수(徐積修), 고조할머니는 박성선(朴性善)의 딸인 문의 박씨(文義朴氏), 증조할아버지는 형조정랑 서유진(徐有鎭), 증조할머니는 이집배(李集培)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 할아버지는 서긍보(徐肯輔), 할머니는 이진철(李鎭-)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고, 아버지는 서진순(徐進淳)이며, 어머니는 강영환(姜永煥)의 딸인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서상렬
徐相烈
서상렬 초상
서상렬 초상
이름
별호 서상열(徐相說)
경은(敬殷)
경암(敬菴)
신상정보
출생일 1854년
출생지 조선 충청도
사망일 1896년
국적 조선
성별 남성
본관 대구
부친 서진순(徐進淳)
모친 진주 강씨
군사 경력
주요 참전 을미의병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

생애

편집

서상렬은 1854년(철종 5년)에 충청북도에서 태어났고, 1869년 그의 아버지 서진순(徐進淳)은 돌아가셨다. 같은 서씨 지친인 서광범(徐光範)의 도움을 받았다고하나 박영효(朴泳孝) 때문에 서상렬은 서광범을 멀리했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그 뒤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조정에 들어온 후 서상렬은 사직했으며, 김평묵(金平默)과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84년(고종 21년)-1894년(고종 31년) 사이에 실패한 갑신정변(甲申政變)과 갑오개혁(甲午改革)이 일어나자 서상렬은 충격을 이기지 못했고 힘든 시절을 겪었다. 1895년(고종 32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났으며, 민비(閔妃)/명성황후는 시해(弑害)되었다. 그 이유 때문에 서상렬은 의병을 결의하고 제천(堤川)에서 의병장 이춘영(李春永)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이 되어 단양(丹陽), 상주(尙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듬해 예천(醴泉)에서 회맹소(會盟所)를 조직하고 대장이 되어 낭천(狼川)에서 전사했다.

서상렬의 문집으로는 경암집(敬菴集)과 춘수당일기(春睡堂日記)이다.[1][2]

가족 관계

편집
  • 고조할아버지: 서적수(徐積修)
    • 증조할아버지: 서유진(徐有鎭)
      • 할아버지: 서긍보(徐肯輔)
        • 아버지: 서진순(徐進淳)
        • 어머니: 강영환의 딸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