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韶顯, 1038년~1096년)은 고려 중기의 승려법상종의 고승이다. 속명(俗名)은 이민(李民), 본관은 인천 이씨, 자는 범위(範圍). 개성 출생. 중서령(中書令) 이자연의 아들이다. 시호는 혜덕왕사(慧德王師)이고, 탑호(塔號)는 진응(眞應)이다.[1]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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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1048년)에 출가하여 해린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1049년) 복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1]

1061년(문종 15) 왕륜사(王輪寺)의 오교대선장(五敎大選場)에 응시하여 대덕(大德)의 법계를 받았고, 1069년(문종 23) 중대사(重大師), 1071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1]

1079년에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하여 절을 중창하였는데 금산사의 역사상 이때가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또한 금산사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치하여 경전을 강독하는 한편, 사경(寫經)·인경(印經) 등 경전의 판각과 유포를 위한 간경장(刊經藏)으로도 이용하였다. 당시 규기의 저작인 《법화현찬》(法華玄贊)과 《유식술기》(唯識述記)를 비롯한 유식론 계통의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교정·개간하였으며, 그 사본을 유통시켰다.[1]

1083년(선종 1)에는 개국사(開國寺)와 자운사(慈雲寺)에 선장(選場)을 마련하여 회주(會主)가 되었고, 그 해 승통(僧統)이 되어 현화사(玄化寺)에 잠시 머물렀다. 그 뒤 다시 금산사로 돌아가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096년 12월 봉천원(奉天院)에서 입적하였다.[1]

제자로는 도생승통 등 1,000여 인이 있었다. 금산사의 동쪽 부도전(浮屠殿)에 탑비가 남아 있다.[1]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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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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