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씨

인천 이씨(仁川李氏) 또는 경원 이씨인천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인천 이씨
관향인천광역시
시조이허겸 (李許謙)
집성촌충청북도 영동군,
대구광역시 달성군,
전라남도 장흥군,
경상남도 의령군,
경상남도 함안군
주요 인물이자연, 이호, 이정,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 이석, 이자겸, 이자량, 이자의, 이자지, 이공수, 이장용, 장경궁주, 정신현비, 사숙왕후, 원신궁주, 순덕왕후, 연덕궁주, 복창원주, 이징옥, 이정희, 이무영, 이승우
인구(2015년)83,855명
비고인천이씨 대종회

역사편집

설화에 따르면 허황후의 23세손인 아찬(阿飡) 허기가 신라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을 때 그해 11월에 안록산의 난이 발생하여 당 현종촉나라로 피난하게 되었다. 그때 허기는 위험을 무릅쓰고 현종을 보위하였으며, 안록산의 난이 진압된 이후 현종이 도성으로 돌아와서 이를 가상히 여겨 시서(詩書)와 황제의 성인 이씨사성하였다. 허기가 신라로 환국하자 신라 경덕왕은 그 공을 기려 식읍 1,500호를 내리면서 소성백의 작위를 봉하였다는 것이다.[1]

하지만 고려의 문정공이었던 이지저는 《이공수묘지명》(李公壽墓誌銘)를 통해, 기평이 시조라고 밝혔다. 이 본관의 시조는 현재의 황해도 신천군에 살던 기평이라는 사람이 소성 태수가 되면서 현재의 인천시 연수구 지역에 터를 잡았는데 그의 후손 중 한 사람이 당에서 이씨 성을 하사받은 것이 시초라는 것이다.[2]

고려 왕조에 이르러서는 문벌귀족 가문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인천 소래산 인근에 거주하였으며, 대대로 신라의 관직을 맡으며 가문을 이어오다가 고려 현종대에 이르러 10세손인 이허겸이 상서좌복야를 지내면서 귀족이 되었다. 신라 왕조에서는 인천 지역의 호족에 불과하였으나 이허겸의 외손녀가 현종의 비로 책봉되었고, 이허겸의 손자인 이자연은 같은 시기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머물다 1050년에는 정2품 관직인 내사시랑평장사가 되었다. 그의 딸 셋은 문종의 비가 되었고, 이자연의 외손자들은 12대 임금 순종, 13대 선종, 15대 숙종이 되었다. 이자연의 친손자인 이자겸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권력을 장악했으나, 이후 17대 임금인 인종에 의해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되어 1126년 생을 마감했다.[3]

본관편집

인천(仁川)은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매소홀현이었는데 경덕왕때 소성으로 개칭, 율진군(시흥군)의 영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13년(태종 13)에 인천군이 되었으며 1949년 인천시로 개칭되고 1981년 7월 1일 직할시로 승격, 경기도에서 분리되었다.

분파편집

  • 시중공파(侍中公派)
  • 공도공파(恭度公派)
  • 쌍명재파(雙明齋派)
  • 충강공파(忠剛公派)
  • 태암공파(苔巖公派)

항렬자편집

분가편집

  • 양산 이씨 - 조선 초기 이조 판서 이만영(李萬英)을 시조로 한다. 일부 후손들은 인천이씨 충강공파로 칭한다.
  • 흥양 이씨 - 이자겸의 난으로 인하여 흥양에 정착한 이언림(李彦林)을 시조로 한다.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