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요시미치(宗義方)는 일본 에도 시대 쓰시마 후추번의 5대 번주이다.

소 요시미치(宗 義方)
제5대 쓰시마후추 번(府中蕃) 번주
1694년 ~ 1718년
무사 정보
시대 에도 시대(江戸時代) 전기 - 중기
출생 덴나(天和) 4년 1월 19일(양력 1684년 3월 5일)
사망 교호(享保) 3년 9월 5일(양력 1718년 9월 28일)
개명 소지로(宗次郎) → 무라오카 사네우지(村岡真氏) → 네오 사네우지(根緒真氏) → 소 요시미치(宗義方)
별명 지로(次郎), 사네우지(真氏, 초명)
계명 대행원전진승보륜대거사(大桁院殿眞乗宝輪大居士)
막부 에도 막부(江戸幕府)
쓰시마후추 번주(対馬府中藩主)
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徳川綱吉) → 이에노부(家宣) → 이에쓰구(家継) → 요시무네(吉宗)
관위 종4위하, 시종(侍従), 쓰시마노카미(対馬守)
씨족 소 씨(宗氏) → 무라오카 씨(村岡氏) → 네오 씨(根緒氏) → 소 씨
부모 아버지: 소 요시자네(宗義真), 어머니: 미우라 나리토모(三浦成友)의 딸 ・ 스가(津河, 고주인高寿院)
양아버지: 소 요시쓰구(宗義倫)
형제자매 요시쓰구(義倫), 후루카와 사네코토(古川真言), 요시미치, 다다 쓰구요시(多田倫寛), 요시노부(義誠), 미치히로(方熈), 다카세 유키미치(高瀬行方), 그 밖의 딸들
자녀 무라오카 유키타카(村岡如喬, 3남), 양자: 요시노부(義誠)
묘소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 쓰시마시(対馬市) 고쿠분(国分) 반쇼인(万松院)

생애 편집

덴나(天和) 4년(1684년) 1월 19일에 3대 번주인 요시자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이름 한 글자를 따서 사네우지(真氏, さねうじ)라고 했는데, 쓰시마 후추번의 세자(世子)인 형 요시쓰구(義倫)가 있었으므로 소 씨가 아닌 무라오카(村岡) 성을 사용하였고, 아버지로부터 쓰시마 시모아가타 군에 있는 네오 촌(根緒村)을 영지로 받아서 네오 씨(根緒氏)라 칭하였다. 겐로쿠(元禄) 7년(1694년)에 4대 번주가 된 형 요시쓰구가 요절하는 바람에 그의 양자로써 가독을 이어받고 쓰시마 후추번의 5대 번주가 되었으며 이름도 소 요시미치(宗義方)로 바꾸게 되었다. 무라오카 씨는 셋째 아들 유키타카(如喬, ゆきたか)가 이었다.[1]

그러나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은거한 아버지 요시자네가 후견인으로써 번의 정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겐로쿠 15년(1702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요시미치는 자신의 뜻대로 번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 무렵 쓰시마 후추번은 대조선 교역 부진과 은광의 산출량 저하로 재정이 악화되고 있었는데, 이를 재건하기 위해 요시미치는 호에이(宝永) 2년(1705년)에 검약령(倹約令)을 내렸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쇼토쿠(正徳) 원년(1711년)에 6대 쇼군(将軍) ・ 도쿠가와 이에노부(徳川家宣)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측의 요청으로 방문한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가 오자 이를 접대하였고 그 공으로 비젠(肥前) 다시로(田代)에 있던 번의 영지를 1,560석 정도 더 받아서 실질 고쿠다카가 1만 3,300석이 되었다.

교호(享保) 3년(1718년) 9월 5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35세. 뒤는 자신의 동생으로 양자로 삼은 우지에 미치노부(氏江方誠, 소 요시노부宗義誠)가 이었다.

조선의 《동사일기》 문견록에는 "도주(島主) 평의방(平義方)는 바로 평의륜(平義倫)의 아우이고 평의진(平義眞)의 서자인데, 주색(酒色)에 빠져 항상 병이 많으며, 성품이 또 혼미하고 용렬한 데다 사무에도 어둡다. 그래서 여러 봉행(奉行)들이 비록 문자(文字)는 모르지만, 역시 단련되고 영리하기 때문에 정령(政令)을 일체 위임하는데 그런대로 모양이 이루어졌다."라고 평하고 있다.

각주 편집

  1. 「유키」(如)는 요시미치의 동생 요시노부의 아들인 소 요시유키(宗義如)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전임
소 요시쓰구
제5대 쓰시마 후추번 번주 (소가)
1694년 ~ 1718년
후임
소 요시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