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니 요리즈미

쇼니 요리즈미(少弐 頼澄, しょうに よりずみ)는 일본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의 무장이다. 쇼니씨(少弐氏) 9대 당주로 남조(南朝)의 편에 서서 부젠(豊前)의 슈고(守護)가 되었다.

쇼니 요리즈미(少弐頼澄)
신상정보
시대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출생 불명
사망 덴주(天授) 4년/에이와(永和) 4년(1368년)
계명 시호혼부(士峰本富)[1]
주군 가네요시 친왕(懐良親王)
관위 다자이노쇼니(大宰少弐)
씨족 쇼니씨(少弐氏)
부모 아버지: 쇼니 요리히사(少弐頼尚)
형제자매 다다스케(直資), 후유스케(冬資), 요리즈미, 요리미쓰(頼光), 아시카가 다다후유(足利直冬)의 아내
자녀 사다요리(貞頼)

아버지 요리히사(頼尚)나 형 후유스케(冬資)와는 길을 달리하여 남조측에 섰으며, 주군 가네요시 친왕(懐良親王)의 뜻을 받들어 조지(貞治) 원년(1362년)에 현지 사찰인 다이라쿠지(大楽寺)에 대해 부젠(豊前) 고게 군(上毛郡)의 세쓰마루나(節丸名) 등의 땅에 대한 안도장(安堵状)을 발급하였고[2] 조지 2년(1363년)에는 다이라쿠지 소유 영지에 대한 다루미 궁내대부(垂水宮内大夫)나 오쓰카 마고지로(大塚孫次郎), 아라마키 신노효에 뉴도(荒巻新兵衛入道) 등의 참람하고 방자한 행위를 단속, 정지시켰다.[3]

덴주(天授) 원년/에이와(永和) 원년(1375년) 미즈시마의 변(水島の変)으로 형 후유스케(冬資)가 북조측의 규슈 단다이(九州探題) ・ 이마가와 사다요(今川貞世, 이마가와 료슌)에 의해 모살당한 뒤, 쇼니 씨의 당주가 되어 히고 국(肥後国)을 본거지로 기쿠치 씨(菊池氏) 등과 동맹을 맺어 사다요 등 북조측 세력에 대항하였다. 그 해 10월 가네요시 친왕의 뜻을 받들어 지쿠젠 국(筑前国)의 산몬 장원(山門庄)의 료케(領家)직을 아소 사(阿蘇社)의 잡장(雑掌)에게 교부하였다.[4]

남조의 세력이 쇠퇴하고 난 뒤에는 히고로 망명하였다.

요리즈미는 덴추 4년/에이와 4년(1368년)에 41세로[5] 사망하였다.

각주

편집
  1. 『横岳系図』
  2. 『大日本史料』第6編之24 131頁
  3. 『大日本史料』第6編之25 90頁
  4. 『大日本史料』第6編之44 230頁
  5. 矢野一貞 著[他]. “『新撰事蹟通考 巻之三十一』(『肥後文献叢書 第三巻』隆文館”. 国立国会図書館. p. 129. 2020年4月25日閲覧。

참고 자료

편집
  • 『大楽寺文書』
  • 『阿蘇文書』
전임
쇼니 후유스케
제9대 쇼니씨 당주
후임
쇼니 사다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