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용 심씨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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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용심씨묘표(淑容沈氏墓表)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진관사 입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묘표이다. 2005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숙용심씨묘표
(淑容沈氏墓表)
대한민국 서울특별시기념물
종목기념물 제25호
(2005년 12월 29일 지정)
면적묘표 1基, 토지 0.45m2
시대조선시대
소유이홍구
위치
서울 진관동 (대한민국)
서울 진관동
주소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126
좌표북위 37° 38′ 31″ 동경 126° 56′ 26″ / 북위 37.641889° 동경 126.940506°  / 37.641889; 126.940506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이 묘표(墓表)는 일본 금융계의 중진으로 수상(首相)・대장상(大藏相) 등을 역임하다가 1936년 암살된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淸)의 저택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淸) 기념공원 안(日本 東京都 港區 소재)에 있다가 2001년 후손들에 의해 국내로 반환된 석비(石碑)이다.

비 몸돌 전면에 '숙용심씨지묘(淑容沈氏之墓)'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건대 성종 대왕의 후궁으로 성종과의 사이에서 2남(利城君과 寧山君) 2녀(慶順翁主・淑惠翁主)를 낳은 숙용(淑容)심씨(沈氏)의 묘 앞에 세워져 있던 묘표로 추정된다. 이 비가 어느 시기에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동안 후손들에게도 분묘 자체가 실전(失傳)된 것으로 오래도록 전해진 것을 보면 성종과 중종의 능이 훼손되기도 했던 임진왜란 때로 추정된다. 현재는 은평구 진관외동 50번지에 조성된 단 위에 모셔져 있다.

숙용심씨는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된 심말동(沈末同)의 딸인데 후궁이 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성종대왕실록의 성종 24년 4월 14일조에 '...심숙원(沈淑媛)이 이번에 부상(父喪)을 당했으니...(후략)'라는 기록이 보이는 바 1493년 이전에 이미 후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대왕실록에 실린 성종대왕 묘지문(墓誌文)에는 성종대왕이 왕비 3인, 후궁 7인을 둔 것으로 나오는데 숙용심씨가 내명부의 4품 품계인 '숙원(淑媛)심씨(沈氏)'로 맨 마지막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심씨는 성종대왕이 세상을 떠날 당시까지 숙원이었다가 후세에 3품의 숙용(淑容)으로 추봉(追封)되었던 것 같다. '숙용(淑容)심씨(沈氏)'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전주리씨 장흥군파 종보・이 묘비 등에서인데 추봉 시기는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묘표는 심씨가 세상을 떠나 분묘가 조성되던 해 또는 숙용으로 추봉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인데 전주리씨 장흥군파 종보에는 숙용 심씨가 중종 을해년(1515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 무렵 묘비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묘표 자체도 16c경에 주로 보이는 형태를 하고 있다. 비 머릿돌[碑首]과 비 몸돌[碑身], 비 받침[碑臺]의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 머릿돌과 비 몸돌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고 이렇게 조성된 비가 2단의 비 받침에 꽂혀 있는, 이른바 통비(通碑)형태이다. 비 머릿돌과 몸돌은 백대리석(白大理石)을, 비대는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비 머릿돌은 뿔이 없는 용, 즉 교룡(蛟龍)이 조각되는 이수(螭首)가 보통인데 여기서는 뿔이 있는 숫룡을 구름무늬 속에 표현하였다. 용 뿔과 수염, 용 코의 조각이 뚜렷하고 섬세하다. 비수의 후면과 좌우측 면은 모두 구름무늬에 둘러싸여 있다. 비 머리에 구름무늬가 사용된 예는 조선 초기 부터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묘표의 경우처럼 구름무늬에 용이 조각된 예는 드문 편으로 16세기 석비 문화를 대표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