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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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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는 신라 진흥왕이 재위 기간 중 영토 확장 사업을 하면서, 그 확장된 곳을 돌아보면서(순수(巡狩)) 세운 비석을 가리킨다. 현재는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창녕비가 남아 있다.[1]

역사편집

진흥왕 순수비로 555년에 세워진 북한산비는 조선 후기의 금석학자인 김정희에 의해 고증되었다. 특히 북한산비는 신라의 한강 하류 진출을 밝혀 주는 비문으로 밝혀졌고 561년에 세워진 창녕비는 신라의 대가야 정복 사실을 증명하는 순수비로 568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황초령비, 마운령비는 신라의 함흥지방 진출을 밝혀 주는 비문으로 최남선이 조사하였다.[1]

배경편집

진흥왕은 정복 전쟁으로 새로 편입한 지역에 기념비를 세웠다. 비석이 세워진 순서를 따라가면 진흥왕의 영토 정복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550년 남한강 상류의 단양에는 단양 적성비를 세웠다. 555년 한강 하류에 북한산비를 세웠다.

당시 남한강 유역은 고구려 땅이었고, 중원 고구려비가 근처에 있었다. 진흥왕은 영토를 넓히고 국경 지역을 돌아보며 기념비를 세웠다. 그 뒤 여러 지역에 순수비(巡狩碑)을 세웠는데 순수비는 임금이 돌아본 곳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으로 순수는 왕이 자기 영토를 둘러보는 것을 말한다.

대가야를 정복한 뒤, 561년 낙동강 유역에는 창녕비를 세웠다. 함경도 지역에는 황초령비(568)와 마운령비(568)를 세웠다. 모두 정복 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신라가 한강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은 단양 적성비와 북한산비이다. 단양 적성비는 5세기에 장수왕이 세웠던 중원 고구려비와 매우 가까운 지역에 있다. 서울 근처의 북한산에 세워진 북한산비는 한강을 차지했다는 확실한 증거물이 되고 있다.[1]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고중세사사전》, 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 한국사사전편찬회(2007년)

참고 자료편집

  • 「고대로부터의 통신」, 진흥왕 순수비,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저, 푸른역사(2004년, 230~239p)
  • 「이야기 한국고대사」, 신라의 성장, 조법종 저, 청아출판사(2007년, 237~2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