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왕국

1130년부터 1816년까지 이탈리아 남부의 옛 주

시칠리아 왕국(라틴어: Regnum Siciliae or Sicilie, 시칠리아어: Regnu di Sicilia)은 1130년부터 1816년까지 시칠리아섬이탈리아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던 왕국이다. 노르만족 기사들이 1071년 시칠리아섬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지배자들을 몰아내고 세운 시칠리아 백작령이 그 기원이다. 1130년 시칠리아 백작 루제루 2세가 시칠리아 왕국을 선포하였다.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는 시칠리아섬에만 국한하지 않고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메초조르노 지방까지 뻗쳐 있었으며, 1530년까지는 몰타섬고조섬을 지배하였다.

시칠리아 왕국
라틴어: Regnum Siciliae
시칠리아어: Regnu di Sicilia
이탈리아어: Regno di Sicilia

 

 

 

1130년~1816년
국기
국기
(14세기부터)
문장
문장
(14세기부터)
표어영혼이 곧 그대의 주인
(라틴어: Animus Tuus Dominus 아니무스 투우스 도미누스[*])[1]
1190년 시칠리아 왕국.
1190년 시칠리아 왕국.
수도팔레르모
정치
정치체제봉건군주제

1130년 ~ 1154년
1266년 ~ 1282년
1759년 ~ 1816년

루제루 2세
카를루 1세
페르디난도 1세
역사
 • 루제루의 대관식
 • 시칠리아 만종 사건
 • 양시칠리아 왕국
1130년
1282년
1816년
인문
공용어
데모님시칠리아인
경제
통화시칠리안 피아스트라
종교
국교로마 가톨릭교회[3]
기타 종교이탈리아 알바니아 교회,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
기타
현재 국가이탈리아 이탈리아
몰타 몰타

1186년 루제루 2세의 유복녀 쿠스탄차하인리히 6세와 결혼하여, 하인리히 6세와 쿠스탄차가 시칠리아 왕국의 왕과 여왕을 겸하게 되었다. 이후 시칠리아의 왕위에 대한 권리는 전혀 다른 군주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갖고 있었다.

1282년 앙주 왕가의 왕 카를루 1세의 독재에 저항해 시칠리아 만종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시칠리아섬은 당시 수도였던 나폴리와 주변의 이탈리아 본토로부터 독립하였다. 카를루 1세가 지배하게 된 이탈리아 본토는 여전히 스스로를 "시칠리아 왕국"이라고 칭했으나, 역사가들은 시칠리아섬의 왕국과 구별하기 위해 이탈리아 본토에 있는 왕국을 나폴리 왕국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시칠리아의 만종 사건을 뒤에서 후원한 아라곤 왕국의 왕 페로 3세가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에 올라, 이후 시칠리아 왕국은 아라곤 연합 왕국의 일원인 트리나크리아 왕국이 되었다.

1816년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리 왕국과 합병되면서 양시칠리아 왕국으로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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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편집

  1. animus(m.)는 "영혼, 정신, 마음" 등을 뜻하는 라틴어 남성형 명사, tuus는 "너의(your)"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로 뒤 따라오는 명사 dominus(m.)를 수식하는 역할을 함, dominus(m.)는 "주인"이라는 뜻의 라틴어 남성형 명사.
  2. Mallette 2011, 5쪽.
  3. Gwynne-Timothy, John (1970). 《People and power in an age of upheavel, 1919 to the presen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41쪽. ISBN 9789733203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