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중앙 관제

신라의 중앙 관제삼국 시대남북국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삼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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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정치 조직은 법흥왕 3년(516년) 군사 분야의 병부(兵部)가 최초로 설치되면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진흥왕 26년(565년) 재정과 국가 기밀을 담당하는 ‘품주(稟主)’를 설치했다.

진평왕(眞平王)대에 이르러 위화부(位和府)·조부(調部)·예부(禮部) 등 중앙관서와 내성(內省)이 갖추어졌다.

진덕여왕(眞德女王) 때 품주를 집사부(執事部)로 개편되면서 ‘창부(倉部)’가 따로 분설 되었다. 이방부(理方府)라는 관청도 설치했다.

위의 관서는 필요에 따라 시기적 차이를 두고 설치되었고, 관서명과 관직명은 변동이 잦았다.

남북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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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에는 집사성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13부를 두었다.

이를 이·호·예·병·형·공의 체계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다.

  • 이 : 위화부
  • 호 : 조부와 창부
  • 예 : 예부와 영객부
  • 병 : 병부, 승부와 선부
  • 형 : 좌·우 이방부
  • 공 : 예작부와 공장부
  • 어사대 : 사정부

그밖에도 국립 대학인 국학(國學, 신문왕 때 설치)과 녹봉을 관장하는 사록관(司祿館, 문무왕 때 설치)이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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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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