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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말주(申末舟, 1429년 ~ 1503년)는 조선문신이다.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자집(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이다. 신숙주(申叔舟)의 동생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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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서화가 신덕린(申德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 신포시(申包翅)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 신장(申檣)이며, 어머니는 정유(鄭有)의 딸이다.[1]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다. 성격이 조용하고 담담하여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벼슬을 사임하고 물러나 순창에 살면서, 귀래정을 지어 산수를 즐겼다.[1] 수양대군 옹립을 반대하면서 부인의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한 것이다. 설씨부인은 문장과 그림에 능했는데 《설씨부인 권선문》(勸善文)이 보물 제 728호로 지정되어 있다.[2]

형 신숙주가 강권하여 벼슬에 나오게 하려 하였으나 뜻에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신말주가 1470년(성종 1) 봄에 순창에 내려가 오래 귀경하지 않아 한때 파직된 것은 사실이나, 그 뒤 1476년 전주부윤, 1483년 창원도호부사, 1487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와 대사간, 이듬해 첨지중추부사·전라수군절도사를 지냈다.[1]

《십로계축도》편집

70세가 되던 1499년, 같은 마을의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설산옥(薛山玉), 장조평(張肇平) 등 9명의 노인을 초청해 계회를 열었고, 이 장면을 화폭에 옮긴 것이 《십로계축도》(十老契軸圖)이다. 그림에는 노인 10명과 술 시중 드는 여인 6명이 등장하는데, 이들 여성이 바로 기녀이며, 현재 남아있는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기녀 그림(기녀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신말주의 후손인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은 자신의 문집 《여암집》(旅菴集)에 ‘서문과 그림 모두 신말주 작’이라고 기록했다. 반면, 서문만 신말주가 쓴 것이고, 시서화에 능했던 신말주의 부인인 설씨(1428∼1508)의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1790년 김홍도가 《십로계축도》를 본떠 《십로도상첩》(十老圖像帖)을 그리기도 했다.[3]

후예편집

신말주의 손자대에서 두 분파로 나뉜다. 장손 신공제의 후손은 순창을 세거지로 하는데, 둘째 손자 신공섭은 서울로 진출해 이 계열은 서울을 세거지로 한다. 신혼이 소북의 인물로 활약했으며, 신유는 17세기 중엽 소북팔대가로 꼽힐 만큼 문장이 뛰어났다. 후대 신경준에 이르러 두 계열은 통합된다.[4]

각주편집

  1. 이, 태진 (2015년 7월 15일). “신말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7년 10월 7일에 확인함. 
  2. 이, 현군 (2016년 2월 20일). “[이현군의 옛지도 여행] 백두대간 개념 정립한 신경준의 출생지, 전라도 순창군”. 《ChosunBiz》. 2017년 10월 7일에 확인함. 
  3. 이, 광표 (20101-10-10). “"현존 最高 기녀그림은 십로계축圖"”. 《동아일보》. 2017년 10월 7일에 확인함. 
  4. 고, 동환 (2003). “여암 신경준의 학문과 사상”. 《지방사와 지방문화》 6 (2): 182쪽. 2017년 10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