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영어: neoliberalism, neo-liberalism)는 1970년대부터 부각하기 시작한 '자본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capital) 흐름에 기반한 경제적 자유주의 중 하나로 19세기의 자유방임적인 자유주의의 결함에 대하여 국가에 의한 사회 정책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자유 기업의 전통을 지키고 사회주의에 대항하려는 사상이다. 토머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920년대 제창했던 새로운 자유(The New Freedom) 정책, 그리고 정치적, 문화적 자유에도 중점을 두었던 자유주의와는 다른 고전적 자유주의에 더 가까운 것이며, 사회적인 면에서는 보수자유주의적인 가치를 지향한다.

국가 권력의 개입증대라는 현대 복지국가의 경향에 대하여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원리의 현대적 부활을 지향하는 사상적 경향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는 방법을 취한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의 영국 대처 정부에서 보는 것처럼 권력기구를 강화하여 치안과 시장 규율의 유지를 보장하는 '작고도 강한 정부'를 추구한다.[1]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원은 대체로 김영삼 정부의 후반기로 소급된다. 주로 작지만 강한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시, 노동 시장의 유연화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 정치·외교적 측면편집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제체제를 무정부적으로 규정하며, 국가를 유일한 합리자로 간주한다. 국가의 보호에 있었던 국민들이 더 이상 국가의 보호 없이 세계 자본에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2] 신자유주의에서 국가가 국민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인 듯하다. 국가는 충분히 자국민들을 정치,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부문에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를 실현한다는 국가들의 경우를 보면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를 혼합하지만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더 치우치고, 국가 정책 결정과정에서도 신자유주의가 더욱 두드러질 뿐 완전한 경쟁상태를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레짐에 대한 관점편집

국제사회의 무정부 상태는 국가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주의와 달리 무정부 상태의 본질을 국가간 게임규칙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핵심체의 부재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것이 곧 상호간의 배신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또한 개별 국가들의 행동이 권력의 지배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레짐과 같은 제도들을 통해 국가간 일부 제한적 협력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국가간 일부 제한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을 국제제도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개별 국가들은 상호주의 전략을 통해서 상대방을 감시하고 비협력적 태도에 대해서 처벌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점에서 국제관계에서 국가간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여기서 국제제도는 국가간 협력의 어려움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된다. 특히 이같은 제도를 통해 국제협력이 용이해질 것으로 보는 이유는 제도들이 행위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수익구조를 바꿀 수 있으며, 다수 행위자들 사이의 게임과 소수 행위자들간 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3]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오랫동안 서구 자본가들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였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세계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수많은 이기적인 개인들로 이뤄졌다고 묘사하면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시장 자본주의와 다양한 친자본가적 정부로 봉건적이고 공동체적인 구조를 대체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했다. 정치적 삶은 어느정도 공유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조직된 직업적 정당이 통제하는 형식적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다원주의라는 허울에 가리운채, 실재의 민주주의는 투표권을 보유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로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한정됐다. 이러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농민은 주로 비선거적인 대중운동을 통하여 국가로부터 몇몇 양보를 얻어냈다. 1930년대 있었던 이러한 노력의 성공은 2차대전 이후 기간의 케인지언 복지국가를 낳았으며, 자본주의적 발전을 구조화하려 했던 이 국가는 민중의 생활수준을 일정 정도 향상시켰다. 1960년대의 민권운동으로 새로운 시민들이 투표권을 얻었으며 새로운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복지국가의 지평을 벗어나게 되었고 급기야 복지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편집

오늘날 케인스주의가 위기에 처함에 따라,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공동체들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과거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방어하는 투쟁의 승리로 얻어진 정부의 사회프로그램 마저 파괴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신자유주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적 가치를 강조한다. 공공프로그램의 사적 영역으로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시장적 힘으로부터의 어떠한 보호조치도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권력이 입법부에서 행정부로 넘어감에 따라 삼권분립이 강화되어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입법부의 횡포가 줄었다는 평가가 있다.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아래로부터의 로비가 갖는 효력은 줄어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저항편집

이러한 모든 변화는 저항에 직면해 왔는데, 그러한 저항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그램을 보호하려는 노력처럼 단편적인 기반에서 이루어졌거나, 아니면 현재의 정치체제내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민주주의를 방어 하려는 노력과 같이 때때로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들 투쟁에서 얻어낸 성공사례는 우리가 종래에 알고있던 것보다 많았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하고자 했던 것과 그들이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비교해보면, 그들의 실패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저항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단지 일부 제한적 개혁만을 희망함으로써 체제의 구조 그 자체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법은 신자유주의의 비민주적 구조 외부에 있으며, 그러한 구조에 반해서 저항하는데 있다.

경제적 측면편집

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케인스의 유효 수요 이론이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았으나 그 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 따라 케인스 학파의 이론의 타당성에 대하여 반기를 든 시카고 학파 (Chicago School of Economics)가 생성되었다. 시카고 학파는 "통화주의자"라고도 불리며 이 이론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된다.

신자유주의는 예전의 자유주의와 같이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즉, 자유 시장, 규제의 완화, 재산권 등을 중시한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방법들을 통해 타국의 시장을 여는 것을 선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개방을 자유 무역과 국제적 분업 (Division of Labour)으로 지칭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 (WTO), 세계은행 (특히 IBRD; 국제부흥개발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ADB; Asian Development Bank)을 통한 다자간 압력의 시장 개방 역시 선호한다. 하지만 예전의 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예전의 자유주의 경우는 이론상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다. 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이 다양한 인적, 물적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억제하려는 국가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자유로운 사회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도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제한이라는 자유방임주의를 인정하지만 그 접근이 다르다. 신자유주의의 경우 시장은 경쟁을 기초로 하지만, 문제가 있을 때 자체수정이 가능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으며, 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전제한다. 예전의 자유주의와는 다른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물질주의적인 탐욕과 단순한 자유주의 이론이 아니라 무질서한 시장에 도덕성을 부여하고, 윤리성을 지니는 이론이다.[4]

철학적 측면편집

신자유주의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 (Social Darwinism)", 즉 적자 생존설로 우수한 자들이 살아남아 인류는 계속 사회적으로 진화 발전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긍정적 입장편집

시카고 학파와 빈 학파를 비롯한 자유시장경제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가 큰 파이를 키웠다는 점에서 공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 최대 의 자유를 줄 때 파이가 커진다는 생각이다. 즉, 시장의 원리를 중시하는 생각이다.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의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세계가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지향해 온 대한민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현재는 민간 주도의 경제로 전환하고 있고, 이와 같이 자유무역이나 규제 완화는 경험에서 얻는 교훈대로 신자유주의를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해 시장의 손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5]

비판편집

미국에서는 지나친 시장주의와 규제 완화로 인해 갖가지 부작용이 나오자 이에 대한 비판이 크게 제기되고 있다. 예일대 경제학과 로버트 실러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는 규제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며, 우리에게는 착한 행동을 강요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선의를 갖고 있는 게 아니며 모두가 관대하고 공익 정신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제한할 규칙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6]

딘 베이커 CEPR(공공정책연구소) 소장은 "우리는 물론 파이를 원한다. 하지만 파이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미국은 그동안 이러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 너무 지나쳤다. 파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었다."라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예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조편집

  1. [네이버 지식백과] 신자유주의 [new liberty, 新自由主義] (매일경제, 매경닷컴)
  2. 김태운 (2005) p190-211
  3. Axelord & Keohane, 1986
  4. 이안 브레머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2011 다산북스
  5. 토머스 프리드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 세계화는 덫인가, 기회인가?》2000 창해
  6. [KBS스페셜] 부동산 거품의 역습 서프프라임 위기, <KBS 1TV>, 2008년 1월 27일, 41분45초~42분5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