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직
양순직(楊淳稙, 1925년 5월 1일 ~ 2008년 7월 24일)은 지난날 해군본부 정훈차감, 3선 국회의원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군인·언론기업가·정치인이자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중령 출신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아호는 심산(心山)이다.
양순직 楊淳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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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년 5월 11일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
사망 | 2008년 7월 24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83세)
국적 | 대한민국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 |
본관 | 청주(淸州) |
경력 | 민주공화당 행정위원 겸 중앙위원 신한민주당 부총재 통일민주당 부총재 평화민주당 부총재 통일국민당 당무위원 신민당 당무위원 자유민주연합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
부모 | 양철식(부), 박정자(모) |
형제 | 아우 양봉직(육군 중장 예편)[1] |
배우자 | 정순자 |
자녀 | 3남 2녀 |
군복무 | 해군 중령 전역(1961년 3월) |
종교 | 불교 |
의원 선수 | 3 |
의원 대수 | 6·7·14 |
정당 | 무소속 |
지역구 | 충남 논산군(6·7대) 전국구 비례대표(14대) |
웹사이트 | 양순직 - 대한민국헌정회 |
생애 편집
1925년 5월 11일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충청남도 공주고등보통학교 졸업을 거쳐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학사 학위 취득하고, 1948년 4월, 해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 후 9년 4개월간을 거듭 진급하여 1957년 8월, 해군 중령 진급한 그는 7개월간 대대장 보임하다가 1958년 3월, 해군본부 정훈차감(전보 조처)이 되었고, 3년간 이 직위에 있다가 1961년 3월, 해군 중령으로 예편하였다. 그 후 서울신문 사장을 지내다가 6, 7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9년 4월 15일 4 · 8항명으로 의원총회에서 예춘호, 박종태, 정태성, 김달수의원과 함께 공화당에서 제명되었다.[2]
1979년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체포,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1980년 정치활동 규제에 묶였다가 해제, 김대중을 따르며 신한민주당 부총재를 지냈고, 1987년 통일민주당 부총재를 맡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대표로 6월 항쟁을 주도하다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결국 이로 인하여 통일민주당 탈당 선언을 하여 무소속 전향하였으며 김대중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후 1987년에 평민당으로 옮겨 부총재를 지냈지만 1988년 결국 평민당 탈당을 하였다.
1992년 김대중과 결별하고 정주영이 주도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하여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김종필이 주도한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하여 상임고문을 지냈다.
가족 관계 편집
학력 편집
- 1944년 충청남도 공주고등보통학교 졸업
- 1948년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 1955년 육군보병학교 졸업
- 1957년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2기
경력 편집
양순직을 연기한 배우들 편집
TV 드라마 편집
참고 자료 편집
각주 편집
- ↑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 위패 목록 - 대한민국 육군 중장 양봉직 將軍”. 2017년 3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3월 23일에 확인함.
- ↑ “공화, 항명 5의원 제명”. 동아일보. 1969년 4월 15일. 1면. 2011년 8월 2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부고]‘3선 개헌’ 반대… 헌정사 큰 획”. 서울신문. 2008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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