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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양씨(淸州 楊氏)는 충청북도 청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청주 양씨 (淸州 楊氏)
관향충청북도 청주시
시조양기(楊起)
집성촌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주요 인물양백연, 양정, 혜빈 양씨, 양면, 양사언, 양사기, 양응춘, 양만고, 양예수, 양순직, 양찬우, 양문희, 양희은, 양희경, 양창수, 양정철, 양승호
인구(2015년)38,161명
비고청주양씨 대종회

목차

역사편집

청주 양씨(淸州楊氏) 시조 양기(楊起)가 원(元)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중서성정승(中書省政丞)으로 있을 때 공민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따라서 고려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외교적 공헌을 하여 삼한창국공신(三韓昌國功臣)으로 상당백(上黨伯)에 봉해졌고 관적(貫籍)을 청주(淸州)로 하사(下賜) 받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1명을 배출하였다.

인물편집

  • 양백연(楊伯淵, ? ~ 1379년) : 시조 양기(楊起)의 손자. 고려 공민왕 초에 판각문사(判閣門事)를 지내고, 1363년(공민왕 12)에 흥왕사(興王寺)의 변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추성익위공신(推誠翊衛功臣)이 되었다. 1370년 서북면부원수(西北面副元帥)로서 지용수(池龍壽)·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동녕부(東寧府)를 쳐서 공을 세웠다. 1377년(우왕 3년)에 서강부원수(西江副元帥)로서 왜구를 격파했으며, 찬성사(贊成事)가 되어 제조정방(提調政房)을 겸하였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 양정(楊汀, ? ~ 1466년) : 6세손. 수양대군을 도와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등을 제거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다.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록되고 양산군(楊山君)에 봉군되었으며,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양면(楊沔, 1444년 ~ 1500년) : 1475년(성종 6) 알성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1491년 장령(掌令)에 이어 교리(校理)·첨정(僉正) 등을 역임하였다.
  • 양사언(楊士彦, 1517년 ~ 1584년) :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수령(守令)을 지냈다.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다. 문집으로 『봉래집(蓬萊集)』이 있다.
  • 양사기(楊士奇, 1531년 ~ 1586년) : 양사언의 동생.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호조좌랑을 거쳐 수령(守令)을 역임하였다.
  • 양만고(楊萬古, 1574년 ~ 1655년) : 양사언의 아들. 1610년(광해군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39년(인조 17) 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통진부사를 지냈다.
  • 양찬우(楊燦宇, 1926년 ~ 2011년) : 육군 소장. 제29대 내무부 장관. 제8·9·10대 국회의원.
  • 양철우(楊澈愚, 1926년 ~ ) : 교학사 대표이사 회장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편집

인구편집

  • 2000년 27,437명
  • 2015년 38,161명

분적된 본관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