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스룬(宋時輪, 송시륜, 1907년 9월 10일 ~ 1991년 9월 17일)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원로 장군 중 하나이다. 황푸 군관학교를 졸업하였고 마오쩌둥의 '장정'에 참가하였다. 한국 전쟁 휴전 협정 이후에 중국 인민지원군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북한군의 화력 보급에 큰 도움을 준 군인이다.

쑹스룬
복무 인민해방군
복무기간 1919년 ~ 1969년
최종계급 육군 대장
주요 참전 중일 전쟁

생애 편집

후난성 주저우시 리링시에서 출생했다. 황푸 군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국공산당의 '장정'에 참가하여 국민당의 군대와 싸웠으나 일본의 대륙 침략 때문에 항일 활동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마오쩌둥중화인민공화국을 창설하고 정식 군대인 인민해방군을 창설하자 중장 계급을 부여 받고 창군의 주역이 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마오쩌둥김일성의 지원 요청으로 비밀리에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중공군의 일부를 한반도로 비밀리에 투입한다. 여기서 쑹스룬은 '인민지원군'으로 위장한 인민해방군 9병단을 이끌고 장진호 전투에서 미 10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쑹스룬은 성격이 불같았기 때문에 올리버 스미스 장군이 지휘하는 미 해병대를 전멸시키려고만 했기 때문에 미 해병대를 상대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반면 후퇴하는 미 육군과 대한민국 국군을 추격하는 데는 실패했다. 1953년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중국에서 대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중공군은 공산주의의 기본 사상인 평등을 내세워서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계급 없이 직책으로 지휘하는 체계였으나 이후 계급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어 중공군은 계급을 창설했다. 중공군이 계급을 창설할 당시에는 직책에 해당되는 계급을 부여했는데 이 때 쑹스룬은 대장 계급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1956년까지 북한군의 화기를 보충하는데 협력한다.

한편 쑹스룬은 1989년 톈안먼 사건중국공산당 중앙고문위원회 상임위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노선을 굳힌 덩샤오핑이 계엄령을 실시하고 톈안먼 광장의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반대했다. 1991년 상하이에서 자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