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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베르트 슈티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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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베르트 슈티프터(Adalbert Stifter, 1805년 10월 23일 ~ 1868년 1월 28일)는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이다.

보히미아의 오버플란(현 체코령에서 아마포(亞麻布)를 직조하고 판매하는 상인을 부친으로 하여 출생하였다. 관리를 지망하여 빈 대학에 입학(1826)하여 법률을 전공했으나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와 선천적인 화재(畵才)를 살려 가정교사를 하는 한편 그림공부를 계속, 대학을 중퇴하고 화가가 되고자 하였다. 한편 31세경부터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고, 우연한 기회에 단편작품 <콘도르>(1840)가 빈의 잡지에 게재되어 호평을 받음으로써 작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빈에서 레나우, 그릴파르처 등과 친교를 맺었고 그 후 발표된 작품(<수작집>)에는 티크와 호프만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중시하였으나 3월혁명(1848)의 유혈과 혼란으로 환멸을 느껴 실의 중에 빈을 떠났다. 그 후에 린츠시(市)의 장학관(奬學官)이 되어 평생 그곳의 자연을 벗하며 교육·미술비평과 창작을 계속하였다.

단편집 <분테 슈타이네>(얼룩돌) 2권(1853)의 서문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자연의 창조물의 가장 작은 것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거기에서 그의 미적 세계관, 대자연의 ‘평온한 법칙’이 토로되어 시적 사실주의의 일각(一角)을 지키는 작가인 헤벨의 비난을 반박하여 혁명체험 후의 예술관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장편 <늦여름>(1857)은 괴테를 되새기게 하는 인간형성의 이상상을 묘사한 교양소설이고. 장편 <비티코>(1867)는 정치적 이상상(理想像)을 묘사하는 역사소설이다. 단순하기는 하나 정열을 깊이 간직하며 자연스럽고 완전한 조화를 추구하는 문체는 최대의 자연묘사가임을 입증하고 있다.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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