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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티움 해전(영어: Battle of Actium, 기원전 31년)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후의 아우구스투스) 간에 로마의 패권을 두고 겨룬 해전이다.

악티움 해전
로마 공화정의 이집트 침공의 일부
Castro Battle of Actium.jpg
날짜기원전 31년 9월 2일
장소
결과 옥타비아누스군의 완벽한 승리
교전국
로마 공화정
(옥타비아누스 측 군대)
로마 공화정
(안토니우스 측 군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휘관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7세
병력
400척 (전투선)
16,000 보병, 3,000 궁수
230척 (전투선)
60척 (이집트 전투선)
30/50 수송선
3,000 보병, 20,000 해병
피해 규모
사망: 모름 사망: 사상자 5,000 이상,
200이상의 함선 나포,격침

로마의 경우 해전에 상당히 취약했으며, 악티움 해전의 경우에도 ‘해전을 육전화’한 로마 식의 전투가 벌어졌다. 해전 자체는 별 특징이 없이 옥타비아누스 측의 승리로 끝났다.

개요편집

기원전 31년 9월 2일에 그리스의 서북부 악티온 앞바다에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시저)의 동방정책(특히 파르티아 공격)을 추진하기 위하여 이집트의 부(富)에 주목했다. 아내와 이혼하고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결혼, 로마 영토 키프로스섬과 크레타섬 등을 선물했다.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로마의 이익을 무시하고 동방적 군주지배를 꿈꾸는 것을 비난하고 자기는 공화정치를 지킨다고 선언했다. 기원전 31년 악티온 연안의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 함대는 패전하여 두 사람은 이집트로 피신하여 자살했다. 이로써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지배권을 차지하게 되었고, 뒤에 로마제국의 첫 황제로의 발판이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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