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변 한씨

한국의 성씨

안변 한씨(安邊 韓氏)는 함경남도 안변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안변 한씨 (安邊 韓氏)
관향함경남도 안변군
시조한련 (韓漣)
주요 인물신의왕후, 한검, 한호, 한사철, 한융전, 한설야
인구(2000년)96명

시조 한련(韓漣)은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의 9세손으로 고려 때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역임했고 안원군(安原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역사편집

안변 한씨(安邊 韓氏)의 시조 한련(韓漣)은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의 9세손으로 고려 때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역임했고 안원군(安原君:안원은 안변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의 후손들이 청주한씨에서 분적하여 그를 시조로 안변(安邊)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다른 문헌에서 찬성(贊成)에 증직된 안원군(安原君) 한유(韓裕)를 안변 한씨(安邊 韓氏)의 일파로 보고 그 후손이 한석봉(韓石峰, 삼화 한씨(三和 韓氏))이라 보기도 한다.[1]

본관편집

안변(安邊)은 함경남도 안변군이다. 남옥저에 속했다가 56년(고구려 태조왕 4)에 비열홀군(比列忽郡)이라 칭하였다. 556년(신라 진흥왕 17)에 비열주를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에 삭정군(朔庭郡)으로 개칭하였다. 920년(고려 태조 3) 등주(登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 안변도호부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등주안변도호부로 개칭했다. 조선시대에는 현‧도호부‧진 등으로 개폐를 거듭하다가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변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학포군(鶴浦郡)과 영풍군(永豊郡)을 병합하였다.

분적된 성씨 본관편집

안변 한씨에서 직계 분적된 성씨 본관으로는 삼화 한씨(三和 韓氏)가 있다.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유명 인물편집

인구편집

대한민국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안변 한씨는 1985년에는 3명, 2000년에는 27가구, 9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부분 함경도에 거주하여 남한에는 인구가 극히 적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