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이씨

안성 이씨(安城 李氏)는 경기도 안성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안성 이씨 (安城 李氏)
관향경기도 안성시
시조이중선(李仲宣)
주요 인물이숙번, 이태구, 이규태
인구(2000년)19,739명

역사편집

시조 이중선(李仲宣) 은 중국 농서이씨청륜계(中國 隴西李氏靑綸系)의 맹선(孟宣) • 중선(仲宣) • 계선(季宣) 삼형제 중 둘째 로,1048년경인 송경력간 (宋慶曆間)에 송나라사신(宋國使臣) 으로 고려에 온뒤 고려 문종왕의 요청으로 세자 세손의 사부(師傅) 가 되었고 고려 문종조(文宗朝)에 초관(初官) 경군호장(京軍戶長)으로 있으면서, 치민선정(治民善政)의 공을 세우고 거듭 천거(薦擧) 되어 문하시중 (門下侍中, 현 대통령비서실장 격)에 천지 되었으며 자의(資義)의 난 때,왕국모(王國髦)와 더불어 이자의(李資義)의 역모를 평정하고 사직(社稷)의 위태로움을 도운 훈업(動業)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현 국무총리 격)에 승진하고,삼한벽상공신으로 좌명됨과 동시에 백하군(白夏君)으로 책봉(册封) 되었다.

3세 이원장(李元長)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합문부사(閤門副使) 이구(李玖), 이사정(李思正)을 중시조로 하는 파 등으로 각각 갈라졌다.

계파편집

- 광릉부원군파(廣陵府院君派)

-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 이부시랑공파(吏部侍郞公派)

- 좌사랑중공파(左司郞中公派)

- 합문부사공파(閤門副使公派)

- 영재공세손파(瀛齋公世孫派)

집성촌편집

- 경기도 이천군 율면 석산리

-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오흥리

- 강원도 이천군 방문면 경도리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노하리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백석리

-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오주리

-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노정리

- 평안남도 순천군 선소면 장평리

- 함경남도 갑산군 진동면 양유리

-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판장리

-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중리

역대 과거 급제자편집

안성 이씨(安城 李氏) 과거(科擧) 급제자(及第者)(조선시대)


이석복(李錫福, 1694 甲戌生) : 문과(文科) 영조6년(1730) 정시 병과(丙科)

이기남(李期男, 1535 乙未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증광시 병과(丙科)

이석록(李錫祿, 1687 丁卯生) : 문과(文科) 영조1년(1725) 정시2 병과(丙科)

이양현(李良鉉, 1687 丁卯生) : 문과(文科) 성종8년(1477) 춘당대시 병과(丙科)

이숙인(李叔仁, 1687 丁卯生) : 문과(文科) 성종23년(1492) 식년시 병과(丙科)

이형우(李亨宇, 1736 丙辰生) : 문과(文科) 정조16년(1792) 식년시 을과(乙科)

이최영(李㝡榮, 1836 丙申生) : 문과(文科) 고종17년(1880) 증광시 병과(丙科)

이협심(李協心, 1777 丁酉生) : 문과(文科) 순조4년(1804) 춘당대시 병과(丙科)

이숙번(李叔蕃, 1373 癸丑生) : 문과(文科) 태조2년(1393) 식년시 병과(丙科)

이충직(李忠直, 1558 戊午生) : 무과(武科) 선조35년(1602)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9명, 무과 17명, 사마시 20명)

인물편집

  • 이영(李永) : 시조 이중선의 아들. 자는 대년(大年). 숙종(肅宗)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인종(仁宗)조에 관직이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에 이르렀으나, 이자겸(李資謙)이 한안인(韓安仁)을 죽일 때 그도 한안인의 매제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진도(珍島)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이자겸이 패망한 후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에 추증되었다.
  • 이대생(李大生) : 이구의 5대손. 회안군(懷安君)의 사위였으며, 관직이 개천군수(价川郡守)에 이르렀다.
  • 이숙번(李叔蕃, 1373년 ~ 1440년) : 이사정의 손자. 무인정사(戊寅靖社)에서 공을 세워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졌다. 태종(太宗)조에 찬성(贊成)을 거쳐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에 봉해졌다.
  • 이태구 (李泰九) : 제11,1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대한민국 정치가이다. 본관은 안성이며 호(號)는 백사(白史)이다.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에서 야당 인사로 활동했으나 원외에 있었다. 1969년 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80년 제5공화국 출범의 기초를 놓은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가한 뒤 민주한국당 전국구 의원으로 2선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