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기 (192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안영기(1929년 6월 19일 ~ 2009년 10월 20일)는 대한민국비전향 장기수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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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선산군에 있는 몹시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이다. 한국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에 부산경남상업고등학교를 제2 회로 졸업하였다.[1]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였고 1950년 9월에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다.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3년간 복무를 마치고 1953년 10월에 제대하였다. 제대 후 남쪽 출신 입대자가 원할 때 대학까지 공부하게 해 주는 정책에 따라 김책공대의 전신인 평양건설대학에 입학하였다. 1958년에 평양건설대학 건축공학부를 졸업하고서 평양의 건설 부문에서 근무하면서 옥류관 건설에도 참여하였다.

1962년에 평양에 아내와 두 딸을 남겨두고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전향을 거부하여 비전향 장기수가 되었으며, 1999년김대중 정부의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총 복역 기간은 약 37년이다.

석방 후 경기도 과천시에서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헌책방을 함께 운영[2]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던 중,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었다. 그 사이 두 딸은 강반석혁명학원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원으로 입당해 일하고 있었으며, 부인도 평양 평천구역에 생존해 있었다. 이것은 당 고급 간부에 준하는 대우였다.[3]

안영기는 송환되기 전인 1998년과 1999년에 이미 각각 조국통일상을 받고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등 꾸준히 관심받았다.[4] 송환 후에는 대한민국에서 수감되어 있을 때 같은 장기수인 류낙진에게 배운 서예 작품 창작을 계속하여 서예 작품전을 열었다.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에 소속된 정식 서예가로서 활동하였다.[5]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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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기 외 13인 (2003). 〈경애하는 (안영기)〉.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 비전향 장기수들의 수기 3》. 평양: 평양출판사.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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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성국 (2000년 4월 3일). “일흔 살 장기수 할아버지 컴퓨터 배우다 - 과천 한백의 집에서 만난 안영기 선생님”. 오마이뉴스. 2008년 8월 26일에 확인함. 
  2. 최종규 (2007년 6월 17일). “끝내 문닫고 만 `장기수 할아버지' 헌책방 (1) - 과천 <한라에서 백두> 문닫다”. 오마이뉴스. 2008년 8월 25일에 확인함. 
  3. 서의동 (2000년 9월 1일). “북송 장기수들,北서 어떤 대우 받을까”. 문화일보. 2008년 8월 25일에 확인함. 
  4. “비전향장기수 재북 가족 - 안영기씨”. 연합뉴스 인용. 2000년 8월 30일. 
  5. 신유리 (2007년 6월 17일). “북송 비전향장기수 ‘특별’ 대우”. 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2008년 8월 2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