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비전향 장기수는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감옥에서 장기간 생활한 국내 빨치산, 남로당, 조선인민군 포로와 남파 간첩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 다른 명칭으로는 ‘미전향 장기수’가 있는데 이는 '아직 전향하지 않은 장기수'라는 의미로 미전향 장기수를 곧 전향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전향을 강요하거나 유인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어서 현재는 ‘비전향 장기수’라는 명칭이 주로 사용된다.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매체로 영화 《송환》과 《선택》이 있다.
역사편집
- 1991년 2월 25일 광복 직후부터 ‘극좌활동’을 하다가 1955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허영철 71살에 특별 가석방
- 1993년 3월 19일 - 리인모 송환
- 1998년 7월 - 대한민국 행정부, 전향 제도 폐지
- 2000년 9월 2일 - 송환을 희망하는 63명 송환
- 2005년 10월 2일 - 사망한 정순택의 시신 송환
- 2017년 3월 25일 - 1960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1991년 12월까지 31년 6개월을 구속, 정부의 강제전향 압박을 거부하다 2002년 사면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전북본부 고문을 맡은 박봉현(98) 사망[1]
2000년 송환된 63명 명단편집
석방된 장기수편집
(체포된 연월일 ~ 석방된 연월일)
- 김선명 1951년 10월 15일 ~ 1995년 8월 15일 (43년 10개월 복역으로 최장기 복역)
- 최수일 1965년 3월 5일 ~ 1999년 2월 25일
- 안학섭 1953년 3월 ~1995년 8월 15일
- 리경찬 1965년 11월 12일 ~ 1999년 2월 25일
- 이종환 1951년 10월 ~ 1993년 3월 6일
- 왕영안 1958년 ~ 1991년 5월 25일
- 우용각 1958년 7월 12일 ~ 1999년 2월 25일
- 김동기 1966년 5월 18일 ~ 1999년 2월 25일
- 김우택 1952년 2월 25일 ~ 1991년 2월 25일
- 장호 1958년 7월 25일 ~ 1991년 2월 25일
- 윤용기 1959년 7월 3일 ~ 1998년 3월 13일
- 임병호 1959년 9월 27일 ~ 1991년 12월 24일
- 한장호 1957년 11월 20일 ~ 1995년 8월 15일
- 박완규 1967년 9월 9일 ~ 1999년 2월 25일
- 방재순 1953년 8월 ~ 1991년 2월 25일
- 이공순 1967년 12월 10일 ~ 1999년 2월 25일
- 장병락 1962년 4월 4일 ~ 1999년 2월 25일
- 박봉현 1960년 2월 19일 ~ 1991년 2월 25일
- 홍명기 1962년 4월 22일 ~ 1999년 2월 25일
- 신인영 1967년 3월 9일 ~ 1998년 3월 13일
- 이경구 1952년 11월 7일 ~ 1989년 6월 9일
- 홍경선 1967년 9월 17일 ~ 1998년 3월 13일
- 안영기 1962년 8월 12일 ~ 1999년 2월 25일
- 윤수갑 1967년 9월 ~ 1998. 3월 13일
- 최선묵 1962년 8월 12일 ~ 1999년 2월 25일
- 김종호 1961년 5월 25일 ~ 1991년 5월 25일
- 류한욱 1955년 ~ 1991년 2월 25일
- 김익진 1969년 6월 10일 ~ 1999년 2월 25일
- 최하종 1962년 3월 5일 ~ 1998년 3월 13일
- 김창원 1969년 6월 12일 ~ 1999년 2월 25일
- 홍문거 1957년 5월 20일 ~ 1993년 3월 6일
- 양정호 1969년 6월 16일 ~ 1999년 2월 25일
- 양희철 1963년 4월 24일 ~ 1999년 2월 25일
- 오형식 1969년 6월 5일 ~ 1999년 2월 25일
- 김명수 1957년 7월 28일 ~ 1993년 3월 6일
- 이재룡 1970년 6월 19일 ~ 1999년 2월 25일
- 허영철 1955년 7월 20일 ~ 1991년 2월 25일
- 김은환 1969년 9월 8일 ~ 1999월 2월 25일
- 김인수 1962년 8월 9일 ~ 1998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