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석지
일대기
편집고황후의 작은오라버니로, 처음 고제가 거병하였을 때부터 객으로서 종군해 진나라와 싸웠다. 기원전 206년, 고제가 한왕으로 봉해지면서 풍(豐)·패(沛)로 돌아가 고제의 아버지와 장인 여선왕을 모셨다.[1] 고제 6년(기원전 201년), 고제가 중국을 통일하고서 건성후(建成侯)에 봉해졌다.[2][3] 혜제 2년(기원전 193년)[2] 혹은 재위 9년 만에(기원전 192년)[3] 죽어 시호를 강(康)이라 했다.[2][3] 작위는 아들 여칙이 이었으나, 죄를 지어 작위를 박탈당했다. 이후에 아들 여록이 조나라 왕이 되면서 조소왕(趙昭王)으로 추존되었다.[2][3]
고제가 고황후 소생인 태자 유영을 폐하고 총애하는 척부인 소생의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하자, 고황후와 상의하고 장량을 협박해 유영을 위해 계책을 내게 했다. 이 사건이 기록된 사기의 유후세가와 한서의 장진왕주전에서 직접 언급되는 이름은 형의 이름인 여택이지만, 작호는 여석지의 작호인 '건성후'로 나온다.[4][5] 이 때문에 이 부분의 여택은 여석지를 잘못 쓴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각주
편집선대 - |
전한의 조왕 (추존) |
후대 아들 여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