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준 (고려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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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준(王綧, 1223 ~ 1283)은 고려의 왕족으로 본관은 개성왕씨(開城王氏)이다. 현종의 후손으로, 현종의 넷째 아들 정간왕의 6대손 청화후 경(淸化侯璟)의 아들이며 승화후 온(承化侯 溫)의 아우이다. 작위는 영녕공(永寧公)이다.
삼별초의 지도자 승화후 온의 친동생이자 삼별초 토벌대의 지휘관인 왕옹의 아버지이다. 원사(元史)에는 그가 제로총관부(諸路摠管部)[1]의 총관에 임명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원사에는 쌍성총관부의 기록이 없으며 왕준은 안무고려군민총관을 했으며 심주를 다스렸다.
가계
편집- 조부 : 계성후(桂城侯) 왕원(王沅)
- 아버지 : 청화후(淸化侯) 왕경(王璟)
- 형님 :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
- 형님 : 단양백(丹陽伯) 왕서(王楈)
- 아우 : 사공(司空) 왕정(王珽)
- 아버지 : 청화후(淸化侯) 왕경(王璟)
왕준이 등장한 작품
편집각주
편집- ↑ 고려사에 기록된 쌍성총관부와 같음.
- ↑ 원사(元使)에는 아락티무르(阿剌帖木兒)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2대 제로총관(諸路摠管)이라 기록됨.원사에는 1274년 1차 일본정벌 당시 소용대장군의 관직이었고 1281년 2차 정벌에는 동정좌부도원수로 참전하였으나 태풍으로 인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 ↑ 원사(元史)에는 쿠오쿠오티무르(闊闊帖木兒)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심양로하부총관(瀋陽路下部摠管)이라 기록됨.
- ↑ 원사(元史)에는 우아이(兀愛)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3대 제로총관(諸路摠官)이라 기록됨. 원사에는 형 왕옹이 1281년 2차 정벌에서 태풍을 만나 죽어 셋째 왕함이 습직하였고 안원대장 고려군민총관 동방정벌좌부도원수 임명되었고 1292년 고려여직한군만호부 총관부가 설치되자 진국상장군 고려여직한군만호부총관 겸 심양안무사 겸 고려군민총관으로 제수되었다. 요양행성 참지정사 까지 오른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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