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와촌 (미야기현)

오사와촌(大沢村)은 1889년부터 1955년까지 미야기현 미야기군에 북서부에 위치했던 촌이다. 1955년 2월 1일에 히로세촌과 합병해 미야기촌의 일부가 되었다. 미야기정을 거쳐 센다이시 아오바구의 일부에 해당한다.

오사와촌
한자 표기大沢村
가나 표기おおさわむら
폐지일1955년 2월 1일
현재 자치체센다이시
폐지 당시의 정보
나라일본의 기 일본
지방도호쿠 지방
도도부현미야기현
미야기군

지리 편집

오사와 촌역은 히로세강이 흐르고 있으며 , 오쿠라강, 이모자와강과의 유역이었다.

역사 편집

오사와 촌은, 에도 시대 이래의 1889년에 정촌제 시행과 함께 이모자와 촌과 오쿠라 촌이 합병해 탄생했다. 이때 새롭게 면사무소를 이모자와 촌사무소가 아카사카에 신축했다. 촌사무소는 1952년에 이전했다. 이 건물은 1955년 합병 후 3개월여 동안 새로운 미야기 정사무소로 사용됐다.

인구 편집

1889년의 호수는 312호, 인구는 2824명이었다. 인구 조사가 시작된 1920년의 인구는 3907명이었고, 1925년의 인구는 3970명이었다.

경제 편집

주산업은 오쿠라 강과 감자와 강의 하류역에 펼쳐진 작은 분지에서의 농업이었으나 산촌인 점, 소비 도시인 센다이와 가깝기 때문에 부업이 활발하였다. 농업에서는 쌀농사와 밭농사가 함께 있었으나 동북 산간이라는 어려운 조건도 있어 흉년 시 쌀이 입는 피해는 심각하였다.예를 들면 1903년에 오자와무라에서는 3223석의 수확이 있었지만, 2년 후의 흉년에서는 46석밖에 수확되지 않았다.그럼에도 메이지 시대 이후 수확량은 점차 증가해 냉해에 대한 내성도 커져 갔다. 쌀 이외의 작물로는 1921년 통계에 따르면 보리가 많고 콩 등이 만들어졌다. 과수에는 감이 있었고, 양잠도 행해졌다.

20세기 전반까지 말 사육이 성행하였으며, 1921년에는 428마리의 말이 있었으며, 소는 끊이지 않았다.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관계는 역전되어 소 사육이 더 활발해졌다.

1940년경 가마자와 광산이 발견되어 티타늄을 포함한 사철을 생산하였다.소규모 광산으로 1945년 휴산하여 1951년 재개하였다.궁성촌이 된 후인 1957년 휴산하여 1963년 재개하였다.(그 후의 경위는 불명이지만, 2005년 현재는 휴산중이다.

참고서적 편집

  • 『미야기현 정촌 합병지』(미야기현 지방과,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