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방 선생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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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방 선생 신도비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신도비이다. 1986년 5월 22일 안성시의 향토유적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오정방 선생 신도비
대한민국 안성시향토유적
종목향토유적 제22호
(1986년 5월 22일 지정)
시대조선시대 숙종 25년(1699) 7월
참고총 높이 190cm, 폭 97cm, 두께 27cm
위치
안성 덕봉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안성 덕봉리
안성 덕봉리
안성 덕봉리(대한민국)
주소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산47-1
좌표북위 37° 02′ 42″ 동경 127° 10′ 45″ / 북위 37.04500° 동경 127.17917°  / 37.04500; 127.17917

개요 편집

오정방(1552∼1625) 선생은 조선 선조, 인조의 때 무신으로 자는 영언(英彦), 호는 퇴전당(退全堂), 본관은 해주(海州)로 수천(壽千)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수억(壽億)에게 입양되었다. 부령부사(富寧府使), 정평부사(定平府使), 지증추부사 겸 부총관, 포도대장, 군기시제조를 역임했다.

선조 37년(1604)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듬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황해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사직, 1623년 인조반정 후 포도대장 •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이괄의 난 때는 인조를 공주로 호종했으며,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양성면 덕봉리 뒷산 묘소 아래 위치한 신도비는 대리석 비신과 동일석의 이주에 장방형의 화강암 비좌를 갖추었고, 이수(螭首)는 두 마리의 용두(龍頭)가 정면을 향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있었으며 풍화로 점차 검게 변해지고 있다.

비신 상단에 횡서(橫書)로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 오공 묘비명(慶尙右道兵馬節度使吳公墓碑銘)>이란 전자(篆字)에 비제(碑題)를 <유명조선국 가선 대부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겸 진주 목사 오공 묘비명 병서(有明朝鮮國嘉善大夫慶尙右道兵馬節度使 兼 晋州牧使 吳公墓碑銘 幷序)>라 했다.

말미에는 <숭정갑신 후 오십 오년 계 무인 7월 일입 崇禎甲申後五十五年 季戊寅七月日立>이란 설립 연대가 새겨 있어, 1699년(숙종25)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비문은 이경석(李景奭) 선생이 글을 짓고, 김수증(金壽增) 선생이 글씨와 전을 맡았고, 비신의 높이는 190cm이고 폭이 87cm이며, 두께 29cm의 규모이다.

참고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