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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류노스케(岡本 柳之助, 1852년 8월 14일 ~ 1912년 5월 14일)는 기슈 번 출신의 군인이다. 일본 제국 육군 포병대 소좌 출신으로 강화도 조약당시, 전권공사(全權公使)의 수행원으로 일하였다. 후에 조선으로 건너가서 이노우에 가오루의 심복으로, 일본제국공사관부무관 겸 조선군부고문으로 공사관에 자리를 잡는다. 이노우에 가오루가 물러나고 오카모토 류노스케는 미우라 고로의 심복으로써, 미우라 고로와 함께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을미사변 이후 1897년부터는, 중국으로 건너가 대륙 곳곳을 떠돌며 일본 정부의 밀정 노릇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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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류노스케
岡本 柳之助
오카모토 류노스케(岡本 柳之助)
오카모토 류노스케(岡本 柳之助)
생애 1852년 8월 14일 ~ 1912년 5월 14일
출생지 일본
사망지 일본 제국
복무 일본 제국 육군
최종 계급 소좌 소좌(少佐)
지휘 일본 육군 포병대
기타 이력 1895년 을미사변 가담

흥선대원군과 밀통편집

흥선대원군은 일본 공사관을 찾아와 명성황후 제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오카모토는 처음에는 이 제의를 거절한다. 그 뒤 이준용이 김학우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된다.

대원군은 장손 이준용이 교동에 유폐된 이래 불만을 품고 공덕리의 별장 아소정에 칩거하면서 외출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뒤에 오카모토가 대원군을 찾아 설득하였다.[1]

유길준은 명성황후를 "세계에서 가장 나쁜 여성"이라고 혹평하였으며[2] 미국인 은사 모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명성황후를 개화당 살해의 배후로 보았다. 편지 본문에서 유길준은 민비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와 비밀 접촉하고, 1894년 가을 개화당 모두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꾸미다가 대원군에게 발각되었고 대원군은 일본공사 오카모토 류노스케와 협의 끝에 일본인들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얻어 그녀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고 진술하였다.[2] 편지에서 유길준은 명성황후 암살은 실행되었지만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 암살 문제를 일본공사와 협의하고 일본측에 약간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큰 실수였다고 지적하였다.[2] 그러나 유길준은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박은식, 《한국통사》(김승일 역, 범우사. 1997) 193쪽.“당시 일본 공사 이노우에는 귀국하고 미우라(三浦梧樓)가 후임으로 도착하여 스기무라(彩村濬) · 오 카모도(岡本柳之助) 등과 민비 제거를 모의했는데, 대원군을 끌어들여 허수아비로 이용하려고 오카모도가 대원군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 무렵 대원군은 장손 준용(埈鎔)이 교동에 갇힌 이래 불만을 품고 공덕동 별장에 칩거하면서 외출도 하지 않고 있었다.”
  2. 정용화, <문명의 정치사상: 유길준과 근대한국> (정용화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4) 93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