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의 2곡 상가라도
상가라도(上加羅都)는 악사(樂師) 성열현(省熱縣) 사람 우륵(于勒)의 12곡 가운데 제2곡명으로 관개수리 제언(堤堰)과 관련한 향가이다.
상가라도(上加羅都) 곡명의 원전사료 편집
- 《삼국사기》에 우륵이 지은 12곡 가운데 2곡은 상가라도(上加羅都)[1]이다.
상가라도(上加羅都) 곡명의 학설 편집
상가라도(上加羅都)로 비정한 고령의 연혁 편집
- 고령군(高靈郡)은 본래 대가야국(大伽倻國)으로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일설에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이른다.]에서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모두 16세 520년이다. 진흥대왕(眞興大王)이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지경으로써 대가야군(大伽倻郡)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이 개명하였다. 지금도 그것에 유래하며, 영현(領縣)은 둘이다. 야로현(冶爐縣)은 본래 적화현(赤火縣)인데 경덕왕(景德王)이 개명하였다. 지금도 그것에서 유래하며 신복현(新復縣)은 본래 가시혜현(加尸兮縣)을 경덕왕(景德王)이 개명하였으며, 지금은 미상이다.[7]
- 신라 진흥왕(眞興王) 23년(562) 9월에, 가야(加耶)의 반란에 왕명으로 이사부(異斯夫)에게 토벌하게 하였다.[8]라는 사료에서 대가야국(大伽倻國)은 562년에 대가야군(大伽倻郡)으로 개정하고,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지금의 고령군(高靈郡)으로 고쳤다.
국명은 대가야국(大伽倻國)이다.
군명은 대가야군(大伽倻郡)과 고령군(高靈郡)이다.
국명과 군명에서 우륵(于勒)이 작곡한 상가라도(上加羅都)의 지명은 상고할 수 없다.
상가라도(上加羅都) 제언의 학설 편집
상가라도(上加羅都) 곡명의 해석 편집
각주 편집
- ↑ 《三國史記 卷第三十二 雜志 第一 樂》
- ↑ 李熙昇《국어대사전》(2000)
- ↑ 金泰植《加耶聯盟史》
- ↑ 송방송《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1》
- ↑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9쪽
- ↑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三國史記 卷第三十四 雜志 第三》髙靈郡 本大加耶國 自始祖 伊珍阿豉王 一云 内珍朱 智 至 道設智王 凢十六世五百二十年 眞興大王 侵滅之以其地爲 大加耶郡 景徳王 攺名今因之領縣二 冶爐縣 本赤火縣 景徳王 攺名今因之 新復縣 本加尸兮縣 景徳王 攺名今未詳
- ↑ 《三國史記 卷第四 新羅本紀 第四》眞興王 二十三年 秋 九月九月 加耶 叛王命 異斯夫討之
- ↑ 《여지도서》충원현 제언
- ↑ 《청풍 성열현인 악성 우륵의 사료집성》(2013)
- ↑ 《국토교통부 4대강 이용도우미 음성듣기 탄금대의 눈물》 [1] Archived 2015년 9월 24일 - 웨이백 머신
- ↑ 《성종실록 63권》
- ↑ 《청풍 성열현인 악성 우륵의 사료집성》(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