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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알렉산더 그레이엄

윌리엄 알렉산더 그레이엄(William Alexander Graham, 1804년 9월 5일 - 1875년 8월 11일)은 미국의 정치인이다. 1845년부터 1849년까지 제30대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1850년부터 1852년까지 제20대 미국 해군 장관을 지냈다.

윌리엄 알렉산더 그레이엄
윌리엄 알렉산더 그레이엄, 1870년~1880년 사이의 사진
출생1804년 9월 5일(1804-09-05)
노스캐롤라이나주 링컨톤
사망1875년 8월 1일(1875-08-01) (70세)
뉴욕주 새러토가스프링스
성별남성
국적미국의 기 미국
학력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경력정치인, 해군장관
직업정치인
소속휘그당

생애편집

1804년 그레이엄은 노스캐롤라이나 링컨톤 근교에서 태어났다.[1] 그의 할아버지는 스코트랜드계 아일랜드인으로 북아일랜드의 다운 주 드럼보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주 체스터 군에 정착했다.[2] 그레이엄은 1824년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1825년에 변호사 인가를 받아 같은 주 힐스보로에서 법률 사무소를 개업했다. 그레이엄은 1833년에 오렌지 카운티에서 노스캐롤라이나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1840년까지 의원을 역임했다. 또한 그동안 하원 의장직을 두 번 수행했다.

1840년 그레이엄은 로버트 스트레인지의 사임에 따라 휘그당에서 미국 상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그레이엄은 같은 해 11월 25일에 상원의원으로 부임하였고, 1843년 3월 3일까지 같은 일에 종사했다. 제27회 연방의회에서는 상원 청구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1845년에서 1849년까지 그레이엄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지냈다. 그 후 1849년 그레이엄은 스페인러시아 대사로 지명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1850년 그레이엄은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의 해군장관으로 지명을 받아 1852년까지 그 직을 수행했다. 1852년 대선에서는 윈필드 스콧의 부통령 후보로 휘그당에서 출마했으나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선거 후, 노스캐롤라이나에 돌아온 그레이엄은 1854년에서 1866년까지 주 상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1864년에서 1865년까지 아메리카 연합국 상원 의원이기도 했다.

1866년 그레이엄은 다시 미국 상원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남북 전쟁 이후 노스캐롤라이나는 그 당시 미국 복귀 승인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신임장을 얻을 수 없었고, 실제로 부임 수 없었다. 1867년에서 1875년까지 그레이엄은 피바디 기금의 수락위원회의 위원을 맡아 남북전쟁으로 피폐한 남부 교육 지원을 실시했다. 그레이엄은 1873년에서 1875년까지 버지니아메릴랜드의 경계에 관한 논쟁의 중재인을 맡았다.

1875년 그레이엄은 뉴욕주 새러토가스프링스에서 사망했다. 그레이엄의 시신은 노스캐롤라이나 힐즈 장로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레이엄의 사후, 그 공적을 인정받아 미국 해군의 구축함 그레이엄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

각주편집

  1. Survey and Planning Unit Staff (July 1974). “Vesuvius Furnace” (PDF).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 Nomination and Inventory》. North Carolina State Historic Preservation Office. 2016년 3월 3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2월 1일에 확인함. 
  2. “보관 된 사본”. 2008년 12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8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